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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작은 역사, 일상91

꿀 먹은 벙*리, 꿀 머금은 벙*리 우리는 무의식중에 ‘꿀 먹은 벙*리처럼 왜 말을 안하냐’ 라는 표현을 쓴다. 국어사전에는 '마음 속의 생각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을 조롱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한다. 아무 대꾸도 안하거나 대응하지 않는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다. 몰래 꿀을 퍼 먹었으니 들킬까봐 아무 말도 안하는 수가 있을 것도 같긴 하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른 뜻 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혹시 ‘꿀 먹음은 벙*리’가 와전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다. 꿀은 맛있는 음식의 대명사였다. 그 맛있고 귀한 꿀을 보면 누구나 먹고 싶어 한다. 아무도 안 볼 때 꿀 한 숟갈을 먹었는데, 채 삼키기도 전에 누가 말을 시키면 꿀 때문에 제대로 말을 할 수가 없다. 몰래 꿀 먹은 게 들통 나니까. 결국 입 안에 가득 찬 꿀 때문에 대답을 할.. 2020. 9. 20.
거문도에 찾아온 두 번째 손님, 미국 군함 와추셋호 1854년 제정 러시아 함대가 처음으로 거문도를 다녀갔다. 원활하게 소통도 잘 되었다. 러시아 함대가 거문도에 오기 20여 일 전에 일본에서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었다. 페리(M.C.Perry) 제독이 이끄는 미국 군함들이 함포의 위력으로 개항을 약속 받은 사건이다. 이른바‘포함외교’에 일본이 무릎을 꿇은 것이다. 당시야 암담했겠지만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에 개항한 것이 오히려 일본의 행운이 되지 않았나. 조선은 영토욕이 강한 일본에 개항하면서 민족 불행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페리제독이 일본에 사용한 방식 그대로 강화도에 와서 개항을 압박한 것이다. 역시 일본은 남의 것 흉내 내는데 뛰어난 민족임에 틀림이 없다.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은 ‘강화도 조약’이다. 1856년 미국은 일본과 가나가와 조약을 체.. 2020. 9. 13.
거문도가 ‘해밀턴항’으로 서방 세계에 알려지다. 오늘날 거문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소재지다. 19세기말 열강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거문도는 당시 조선 국내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남해의 외로운 섬이었다. 가장 큰 섬인 서도와 두 번째 큰 동도에만 주민들이 살았다. 두 섬에는 각각 2개의 자연부락에 2천 여 주민들이 어업과 농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열악한 생활수준은 여느 섬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작은 섬 거문도가 역사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은 외국 선박들이 눈독을 들이면서 부터다. 1845년 6월 하순부터 7월 중순에 걸쳐 영국 해양탐사선 사마랑호가 제주도와 거문도 해역을 탐사하고 돌아갔다. 에드워드 벨처(Edward Belcher) 함장은 1848년 『사마랑호 탐사항해기(Narrative of the Voyage of HMS Samara.. 2020. 9. 6.
천연두 바이러스에 기습당한 18세기 조선 조선 국왕 27명 중에서 최장기간 재위한 21대 왕은 영조 임금이시다. 숙종의 둘째 아들로 1694년 숙빈 최씨에게 태어났다. 어머니가 궁중 나인들의 수발을 드는 미천한 신분인 ‘무수리’ 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평생 스트레스를 받았던 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른바 사도세자로 더 잘 알려진 아들 장헌세자를 쌀뒤주에 감금하여 죽게 만든 왕이다. 영조대왕(세종만 대왕이 아니고 조선의 모든 왕이 ‘00대왕’으로 기록됨)은 1776년 3월에 83세로 승하하셨다. 따라서 재위 기간도 역대 최고다. 1724년 8월에 즉위했으니 51년 7개월을 왕위에 있었던 것이다. 아들 장헌세자가 죽었으므로 손자인 정조에게 물려주었다. 정조 임금도 세자 시절에는 아버지 장헌세자처럼 할아버지 영조의 눈 밖에 날까 봐 노심초사 전전긍.. 2020. 8.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