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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작은 역사, 일상

거문도에 찾아온 두 번째 손님, 미국 군함 와추셋호

by 헬나이트 2020.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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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4년 제정 러시아 함대가 처음으로 거문도를 다녀갔다. 원활하게 소통도 잘 되었다. 러시아 함대가 거문도에 오기 20여 일 전에 일본에서는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었다. 페리(M.C.Perry) 제독이 이끄는 미국 군함들이 함포의 위력으로 개항을 약속 받은 사건이다. 이른바‘포함외교’에 일본이 무릎을 꿇은 것이다.

페리제독이 승선한 기함 '서스퀘해나'호

당시야 암담했겠지만 영토적 야심이 없는 미국에 개항한 것이 오히려 일본의 행운이 되지 않았나. 조선은 영토욕이 강한 일본에 개항하면서 민족 불행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페리제독이 일본에 사용한 방식 그대로 강화도에 와서 개항을 압박한 것이다. 역시 일본은 남의 것 흉내 내는데 뛰어난 민족임에 틀림이 없다.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은 ‘강화도 조약’이다.

페리제독의 대일 포함외교에 투입된 '새라토가'호

1856년 미국은 일본과 가나가와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일본의 빗장을 열었다. 이를 계기로 미국 선박들이 일본과 중국을 빈번히 드나들었다. 그 길목에 위치한 거문도를 주목하게 되었다. 1867년 1월 말경 미국 해군 슈펠트(R.W.Shufeldt : 18211895) 중령이 함장인 군함 와추셋(Wachusett)호가 거문도를 방문했다.

슈펠트 중령의 15년 후 제독 시절 모습

슈펠트 함장에게 주어진 임무는 앞서 1866년 대동강에서 소각 당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의 행방을 수색하고, 거문도의 전략적 가치를 조사하여 결과를 보고하는 것이었다. 중국 산동반도의 지부항에서 미국 박물학자 비치모어(A.S.Bichmore)를 태우고 황해도 장연현 목동포에 들려 조선측에 서신을 전달했다. 답신을 받으러 오겠다는 말을 남긴 후 남쪽으로 항해하여 거문도에 입항한 것이다.

비치모어를 통해 5일간 거문도 주민들과 접촉하면서 탐사임무를 마치고 2월 초에 돌아갔다. 슈펠트는 거문도에 대해 ‘미국 해군기지로 손색이 없으며, 뛰어난 자연 조건을 갖춘 아름다운 섬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제출했다.

군함을 숨기기 좋은 동도,서도,고도로 둘러쌓인 거문도 내항 

슈펠트 함장은 해군 중령으로 조선에 왔던 인연인지 몰라도 15년이 지난 후에 해군 제독이 되어 다시 조선을 찾아왔다. 그는 1882년 5월 미국 대표 자격으로 조선 전권대신 신헌(申櫶)과 인천에서 회담했다. 그리고 ‘조미수호통상조약’이 체결되었다. 조선이 서방 국가와 맺은 최초의 수호통상조약이었다.

자유공원 입구 인근에 세워진 표지석(인천시 중구 북성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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