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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석씨’와 항일 의병장 석상룡(石祥龍)을 아시나요?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포상정보’에는 석상룡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907년 함양 일대에서 50여명의 동지를 규합하여 의진을 구성하고 스스로 의병장이 되었다. 주변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양한규(梁漢奎)·고제량(高濟亮)·문태수(文泰洙, 泰瑞) 의병장 등과 제휴하여 함양·산청·남원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지리산을 본거지로 삼아 왜적 다수를 살상하는 등의 활약을 하다가 1911년 체포되었다. 5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1916년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지리산 일대를 근거지로 의병을 모아 일제에 항거했던 의병장 석상룡은 황해도 해주를 본관으로 하는 해주 석씨다. 그의 선대도 3백 여 년 전 임진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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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안 강릉-속초 일원 봄여행(1) 동창생 3명이 승용차를 타고 2021년 5월 10일 영동고속도로를 따라 강릉으로 갔다. 숙소는 3일 동안 속초 한화 쏘라노에 정했다. 강릉에서는 오죽헌에 먼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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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겨울 여행-특이한 전통 무덤 양식-일반인, 제주 부씨 묘역, 가족묘역 제주도를 여행하는 관광객이면 누구나 한 번쯤은 독특한 묘지 양식에 관심을 가져보았을 것이다. 2020년 12월 17일부터 22일까지 5박 6일 동안 여행하면서도 묘지 사진을 여러 장 찍었다. 시신을 안장한 봉분은 육지의 여느 묘지와 다를 것이 없는 바가지를 엎어 놓은 형상이다. 비교적 잔디가 무성하게 잘 자라고 있는 것도 눈길을 끈다. 그러나 역시 큰 차이 점은 묘지 주변을 제주 화산석으로 둘러싸고 있는 사각형의 울타리석이다. 길이를 눈대중으로 살펴보니 울타리석의 내면 3~4m, 외면 4~6m, 폭과 높이 50cm~1m 내외 정도로 측정된다. 주택 인근이나 감귤밭, 무밭 가장자리에 비좁게 자리 잡은 묘지는 내면 2~3m, 외면 3~4m 정도로 울타리석의 규모도 작다. 오름이나 큰 밭에 넓게 자리 잡은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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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 강씨에서 토착화 한 ‘제주 강씨’ 수년 전에 우연히 제주도 출신의 강씨 학생으로부터 자신의 조상이 제주도에 입도한 것이 신덕왕후의 친정 후손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황해도 신천(信川)을 본관으로 하는 강씨들이 그 멀고 먼 제주도에 정착한 까닭이 궁금해졌다. 조선 태조대왕 이성계의 왕비이신 신덕왕후는 신천 강씨다. 그리고 사실상 새 왕조가 건국된 후 최초로 왕비가 된 분이다. 이성계의 첫째 부인 한씨는 비록 6남 2녀를 낳았으나 조선 왕조가 건국되기 전 해인 1391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왕비는 아니었다. 제2대왕 정종이 즉위한 직후 자신의 생모 한씨를 신의왕후로 추존한 것이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는 신덕왕후 능침인 정릉(貞陵)이 있다. 태조는 끔찍이 사랑하던 신덕왕후 강씨가 1396년(태조5) 별세하자 당시 성 내인 중구 정동 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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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역에서 단동역으로 북한 신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면 바로 도착하는 단둥, 현재 단둥으로 불리는 단동은 옛 고구려의 영토였다. 서기 668년 고구려가 신라-당의 연합군에게 멸망한 후로는 당나라가 안동에 치소를 둔 안동도호부를 설치했다. 그 후 발해가 건국되어 세력을 넓힐 때는 발해의 영토였다. 발해는 동북쪽으로 오늘날 러시아 연해주의 크라스키노와 우수리스크를 포함할 정도로 엄청나게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 그 후로 여진족이 만주에서 발흥하여 후금을 세워 청으로 국명을 바꾸고 북경에 수도를 정했다. 이 때 자신들의 발원지인 만주를 신성한 지역이라 하여 봉금령을 내렸다. 아무도 못살게 하니 ‘무주공산’이 되었다. 그 후 1874년 봉금령은 해제되고, 1876년 안동현이 설치되었다. 과거 ‘안동도호부’에서 유래한 명칭이 지명이 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