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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남성 여행-(3) 호도협, 차마고도(중도객잔), 이강 고성 동파만신원에서 한 참을 달려 옥룡설산 뒤편 계곡을 따라 들어갔다. 오른쪽 창밖의 강폭은 갈수록 좁아졌다. 호랑이가 뛰어서 건너갈 정도로 좁은 금사강(金沙江, 진사강 : 장강의 부분 명칭) 계곡에 호도협이 있다. 그러니 물살이 사납고 거세다. 버스 주차장 입구에 호랑이 상이 호도협에 가까이 왔음을 알려준다. 호도협 전망대서 내려 보니 건너편에 포효하는 호랑이 상이 벼랑에 세워져있다. 여기부터는 이른바 '빵차'로 불리는 승용차로 이동해야 한다. 현지 주민이 숙달된 운전솜씨로 합피(하바)설산의 낭떠러지기를 거침없이 질주한다. 이 위험한 운전은 그 지역 주민들만 할 수 있단다. 도중에 두려움을 느낀 일행이 무섭다고 차를 세워버리기도 했다. 가이드가 겨우 달래서 서서히 이동했다. 잠시 후에는 차도 갈 수 없는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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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 강씨에서 토착화 한 ‘제주 강씨’ 수년 전에 우연히 제주도 출신의 강씨 학생으로부터 자신의 조상이 제주도에 입도한 것이 신덕왕후의 친정 후손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황해도 신천(信川)을 본관으로 하는 강씨들이 그 멀고 먼 제주도에 정착한 까닭이 궁금해졌다. 조선 태조대왕 이성계의 왕비이신 신덕왕후는 신천 강씨다. 그리고 사실상 새 왕조가 건국된 후 최초로 왕비가 된 분이다. 이성계의 첫째 부인 한씨는 비록 6남 2녀를 낳았으나 조선 왕조가 건국되기 전 해인 1391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왕비는 아니었다. 제2대왕 정종이 즉위한 직후 자신의 생모 한씨를 신의왕후로 추존한 것이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는 신덕왕후 능침인 정릉(貞陵)이 있다. 태조는 끔찍이 사랑하던 신덕왕후 강씨가 1396년(태조5) 별세하자 당시 성 내인 중구 정동 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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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에 새겨진 해외파병(3)-조선의 대마도 왜구 정벌군 파병 1392년 출범한 조선은 건국 초기에 왜구의 소굴을 소탕할 원정군을 편성했다. 고려말기부터 서남해안에 출몰해 극성을 부리던 왜구는 이미 사회 혼란의 주범이 되고 있었다. 조선 건국자들은 고려 멸망이 왜구의 침공으로 인한 사회 혼란에 기인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여진이나 왜에 대해서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교린정책’을 추진했다. 그런데 국시와도 같은 대외 정책이 위협을 받게 되자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앞서 13세기 후반 고려군이 원나라의 일본 침공에 파병한 것과는 달리 독자적으로 원정군을 편성해 1419년 왜구의 소굴 대마도로 쳐들어갔다. 이른바 ‘기해동정’으로 불리는 조선군의 출병은 1419년 5월에 왜선 40여 척이 충청도 해안에 쳐들어와 약탈․방화한 사건이 계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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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의 분신 무의공 이순신(1)-또 한 사람의 이순신 조선은 건국된 후로 2백 년 동안 평화롭게 살았다. 1592년 4월 일어난 임진왜란은 전쟁을 잊고 살던 조선에 참혹한 시련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조선은 수많은 전쟁 영웅들의 활약으로 멸망의 벼랑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그 많은 영웅들 중에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을 대표적 인물로 손꼽는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가 지휘한 여러 해전의 승리가 곧 나라를 구한 결정적인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충무공 이순신의 휘하에 또 다른 이순신이 있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마치 그의 분신처럼 전장을 누비던 무의공(武毅公) 이순신(李純信)이다. 1553년(명종8)에 태어나 40세에 임진왜란을 맞이했다. 1545년(인종1)에 태어나 당시 48세이던 충무공 이순신 보다 여덟 살 연하인 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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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8-4, 2022.4.23 칡오름, 머체왓 숲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