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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열도의 근친혼과 치아교정(치열이 고르지 못한 이유) 일본은 치아교정술이 매우 발달한 나라다. 그래서 한국 치과의사들이 그 기술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주요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치아교정 관련 간판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치과병원도 일본에 있다고 한다. 이는 곧 치아를 교정하는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일본인이 텔레비전에 비칠 때 유심히 보면 치열이 고르지 못한 사람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일본인의 치열이 고르지 못한가. 먹는 음식과 연관이 깊거나 생태학적으로 유전인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은 크고 작은 여러 개 섬으로 구성된 섬나라다. 육지인 대륙 국가와 인종적 교류를 했던 국가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섬에 버금가는 반도국이기는 하나 주로 전쟁에 의..
- 제주도 1주일 살기 둘째날(4.22) 둘째 날은 다음날 한라산 등반(4.23 예약 등반)을 위해 몸풀기 날로 정했다. 숙소인 보물섬 펜션에서 멀지 않은 오름인 지미봉과 그 일대 해안을 둘러보았다. 제주도에만 있는 해녀박물관도 관람했다. 돌아오는 길에도 해안 유적지들을 둘러보았다.
- ‘해주석씨’와 항일 의병장 석상룡(石祥龍)을 아시나요?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포상정보’에는 석상룡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907년 함양 일대에서 50여명의 동지를 규합하여 의진을 구성하고 스스로 의병장이 되었다. 주변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양한규(梁漢奎)·고제량(高濟亮)·문태수(文泰洙, 泰瑞) 의병장 등과 제휴하여 함양·산청·남원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지리산을 본거지로 삼아 왜적 다수를 살상하는 등의 활약을 하다가 1911년 체포되었다. 5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1916년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지리산 일대를 근거지로 의병을 모아 일제에 항거했던 의병장 석상룡은 황해도 해주를 본관으로 하는 해주 석씨다. 그의 선대도 3백 여 년 전 임진년(15..
- 신천 강씨에서 토착화 한 ‘제주 강씨’ 수년 전에 우연히 제주도 출신의 강씨 학생으로부터 자신의 조상이 제주도에 입도한 것이 신덕왕후의 친정 후손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황해도 신천(信川)을 본관으로 하는 강씨들이 그 멀고 먼 제주도에 정착한 까닭이 궁금해졌다. 조선 태조대왕 이성계의 왕비이신 신덕왕후는 신천 강씨다. 그리고 사실상 새 왕조가 건국된 후 최초로 왕비가 된 분이다. 이성계의 첫째 부인 한씨는 비록 6남 2녀를 낳았으나 조선 왕조가 건국되기 전 해인 1391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왕비는 아니었다. 제2대왕 정종이 즉위한 직후 자신의 생모 한씨를 신의왕후로 추존한 것이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는 신덕왕후 능침인 정릉(貞陵)이 있다. 태조는 끔찍이 사랑하던 신덕왕후 강씨가 1396년(태조5) 별세하자 당시 성 내인 중구 정동 옛 ..
- 운남성 여행-(1) 초웅 공룡박물관, 대리석 원조 대리국, 이호(이해) 2020년 1월 20일부터 24일까지 이른바 4박 5일짜리 패키지 여행을 부부가 다녀왔다. 그동안 고교 동창생과 동부인하던 여행과 달리 둘이 나섰다. 그러나 동반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32명이어서 걱정도 앞섰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이렇게 많이 출발하기는 처음이니 그렇다. 20일 밤 11시가 넘어서 출발한 비행기는 5시간 이상 날아서 운남성 현지 시각으로 21일 새벽 3시경에 곤명 비행장에 도착했다. 곤명은 내게는 낯선 지명이 아니다. 1985년 독립항쟁사를 연구할 때 익숙해진 지명이다. 연합군이 장개석 군대를 지원할 때 육로와 항공로의 종착점이 곤명이었다. 미얀마(옛 버마)에서 육로로 곤명에 이르는 통로를 ‘버어마 공로’라 불렀다. 장개석을 지원하는 통로라는 뜻으로 ‘원장(援蔣) 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