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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 강씨에서 토착화 한 ‘제주 강씨’ 수년 전에 우연히 제주도 출신의 강씨 학생으로부터 자신의 조상이 제주도에 입도한 것이 신덕왕후의 친정 후손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황해도 신천(信川)을 본관으로 하는 강씨들이 그 멀고 먼 제주도에 정착한 까닭이 궁금해졌다. 조선 태조대왕 이성계의 왕비이신 신덕왕후는 신천 강씨다. 그리고 사실상 새 왕조가 건국된 후 최초로 왕비가 된 분이다. 이성계의 첫째 부인 한씨는 비록 6남 2녀를 낳았으나 조선 왕조가 건국되기 전 해인 1391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왕비는 아니었다. 제2대왕 정종이 즉위한 직후 자신의 생모 한씨를 신의왕후로 추존한 것이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는 신덕왕후 능침인 정릉(貞陵)이 있다. 태조는 끔찍이 사랑하던 신덕왕후 강씨가 1396년(태조5) 별세하자 당시 성 내인 중구 정동 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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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그 고통의 기록(1)-Ⅲ 오희문 『쇄미록』의 주요 내용 오희문의 일기책 『쇄미록』은 모두 7책으로 구성돼 있다. 제1책은 「임진남행일록」과 「임진일록」, 제2책 「계사일록」, 제3책 「갑오일록」은 각각 1개 책으로 독립돼 있다. 제4책은 「을미일록」·「병신일록」·「정미일록」으로 묶여 있다. 제4책의 「정미일록」은 제5책 전체와 제6책에 「무술일록」과 함께 수록되었다. 나머지 「기해일록」·「경자일록」·「신축일록」은 제7책에 수록했다. 제1책의 「임진남행일록」은 일기가 아니며, 주요 내용이 있을 때만 기록했다. 4월 16일에 전라도 장수에서 왜란이 발발한 소식을 들었다. 또 패전 소식에 안타까워하면서 대안을 제시하거나 분석한 내용을 수록한 것이 특징이다. 역시 제1책에 수록된 「임진일록」의 시작인 1592년 7월부터의 기록은 저자가 몸이 아파 빠트린 것으로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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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의 분신 무의공 이순신(6)-전라병영에서 순직한 무의공 이순신 전쟁이 끝난 이듬해인 1599년 이순신은 포도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서 충청수사를 잠시 맡았다가 1601년 황해병사로 나갔다. 이때 도체찰사 이덕형(李德馨)은 이순신을 수군에 근무시켜야 한다고 건의했다. 이순신 같이 수전(水戰)에 능한 장수를 육진(陸陣)에 배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을 폈다. 그 후 선조는 수원 부사와 경상우병사를 거친 다음에야 이순신을 전라좌수사에 임명했다. 요직을 거치기는 했으나 순탄한 관직생활은 아니었다. 광해군이 즉위한 후로 임해군 역모사건에 연루된 혐의를 받아 관직을 떠난 적도 있었다. 혐의가 풀리면서 1610년 전라도 육군 최고 사령관인 전라병사로 부임했다. 그 해 9월 ‘장례를 검소하게 할 것이며, 절대로 병영의 군수품을 낭비하지 말라’고 유언한 후 강진의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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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주민에 대한 영국군의 세련된 친화책 거문도 주민들이 영국 해군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정황은 아주 흔하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요한 영국 해군은 그들의 노동력과 경작지를 이용할 때마다 적절한 대가를 지불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청나라 은화나 담배·음료수·통조림 등과 같은 군인들이 사용하는 생필품 내지 기타 일용 잡화였을 것이다. 주민들은 영국 군의관에게 의료서비스를 받기도 했다. 의료혜택과는 무관한 환경에서 살아온 현지인들에게 제공된 근대적 의료기술은 매우 놀라운 경험이었을 것이다. 주민들의 생활모습, 자연경관 등을 사진 찍거나 스케치한 영국군 자료들이 양측의 친밀한 관계를 대변해 준다. 영국군과 함께 청국인과 일본인이 들어와 있었기 때문에 주민들과의 의사소통도 비교적 원활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군도 거문도 주민들의 전통적 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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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장공 양헌수와 병인양요(10)-되돌아 본 충장공 양헌수 대장의 일생 무인의 문집인 『하거집』의 내용을 통해 느껴지는 저자 양헌수에 대한 인상은 문무겸전한 ‘선비 무인’이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그는 조선의 격변기인 19세기를 살았던 전형적인 무인이다. 동시에 이항로(李恒老)의 문하에서 유학을 공부하여 학자적 소양을 풍부하게 갖춘 행정가이기도 했다. 증조부와 조부가 각각 병사와 수사를 역임한 전통을 계승하여 무인의 길로 들어선 후에도 책을 멀리하지 않았고, 다양한 종류의 글을 남겼다. 특히 『하거집』에는 양헌수의 관직생활과 관련된 저술들이 많다. 일반 문인 학자들의 문집과 다른 점이다. 주로 군수․목사(牧使)․병사․어영대장․좌포장․형조판서․금위대장․공조판서에 이르기까지 여러 관직을 거치면서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직접 작성한 글이다. 그래서 행정 문서로서의 성향이 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