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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그 고통의 기록(1)-Ⅱ 『쇄미록』 저자 오희문의 가계 『쇄미록』을 저술한 오희문 선생은 해주오씨 시조로부터 13세손이며, 석성 현감 오옥정의 손자다. 장성 현감과 사헌부 감찰을 역임한 오경민의 아들이다. 어머니 고성 남씨와의 사이에 3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539년(중종34) 윤 7월 25일 충북 영동의 황간 외가에서 출생하여 10여 세 때까지 외사촌들과 함께 자랐다. 저자 오희문은 17세 무렵에 연안 이씨와 혼인하여 조선 초기 명신 이석형의 현손인 이정수의 사위가 되었다. 그의 아호는 ‘비연’이다. 결혼 후에는 주로 성균관 북쪽에 위치한 처가에서 처남들과 함께 지냈다. 오희문 대에 이르러 친가는 물론 외가와 매가 및 처가 일족들이 서울에 모여 살면서 가계가 더욱 번성해졌다. 처가의 도움을 받아 노비를 거느리며 규모 있는 양반생활을 영위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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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 강씨에서 토착화 한 ‘제주 강씨’ 수년 전에 우연히 제주도 출신의 강씨 학생으로부터 자신의 조상이 제주도에 입도한 것이 신덕왕후의 친정 후손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황해도 신천(信川)을 본관으로 하는 강씨들이 그 멀고 먼 제주도에 정착한 까닭이 궁금해졌다. 조선 태조대왕 이성계의 왕비이신 신덕왕후는 신천 강씨다. 그리고 사실상 새 왕조가 건국된 후 최초로 왕비가 된 분이다. 이성계의 첫째 부인 한씨는 비록 6남 2녀를 낳았으나 조선 왕조가 건국되기 전 해인 1391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왕비는 아니었다. 제2대왕 정종이 즉위한 직후 자신의 생모 한씨를 신의왕후로 추존한 것이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는 신덕왕후 능침인 정릉(貞陵)이 있다. 태조는 끔찍이 사랑하던 신덕왕후 강씨가 1396년(태조5) 별세하자 당시 성 내인 중구 정동 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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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그 고통의 기록(1)-Ⅲ 오희문 『쇄미록』의 주요 내용 오희문의 일기책 『쇄미록』은 모두 7책으로 구성돼 있다. 제1책은 「임진남행일록」과 「임진일록」, 제2책 「계사일록」, 제3책 「갑오일록」은 각각 1개 책으로 독립돼 있다. 제4책은 「을미일록」·「병신일록」·「정미일록」으로 묶여 있다. 제4책의 「정미일록」은 제5책 전체와 제6책에 「무술일록」과 함께 수록되었다. 나머지 「기해일록」·「경자일록」·「신축일록」은 제7책에 수록했다. 제1책의 「임진남행일록」은 일기가 아니며, 주요 내용이 있을 때만 기록했다. 4월 16일에 전라도 장수에서 왜란이 발발한 소식을 들었다. 또 패전 소식에 안타까워하면서 대안을 제시하거나 분석한 내용을 수록한 것이 특징이다. 역시 제1책에 수록된 「임진일록」의 시작인 1592년 7월부터의 기록은 저자가 몸이 아파 빠트린 것으로 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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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주석씨’와 항일 의병장 석상룡(石祥龍)을 아시나요? 국가보훈처 독립유공자 공훈록 ‘포상정보’에는 석상룡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1907년 함양 일대에서 50여명의 동지를 규합하여 의진을 구성하고 스스로 의병장이 되었다. 주변 일대에서 활약하고 있던 양한규(梁漢奎)·고제량(高濟亮)·문태수(文泰洙, 泰瑞) 의병장 등과 제휴하여 함양·산청·남원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지리산을 본거지로 삼아 왜적 다수를 살상하는 등의 활약을 하다가 1911년 체포되었다. 5년간의 옥고를 치른 후 1916년 석방되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지리산 일대를 근거지로 의병을 모아 일제에 항거했던 의병장 석상룡은 황해도 해주를 본관으로 하는 해주 석씨다. 그의 선대도 3백 여 년 전 임진년(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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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장공 양헌수와 병인양요(6)-전술의 기본에 충실한 천총 양헌수 양헌수는 선발대 38명을 직접 이끌고 11월 6일 오후 4시경 덕포 나루에 도착했다. 앞서 숨겨 둔 선박을 끌어내 도하 준비를 갖추고, 이날 저녁에 후속 부대가 도착하자 5척으로 도하 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이튿날(11.7) 새벽에 중군 이용희로부터 통진부로 철수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덕포와 통진부의 중간쯤 되는 곳에 이르자 다시 덕포로 돌아가 계획대로 추진하라는 명령이 다시 전달되었다. 덕포로 돌아온 양헌수는 날이 어두워지자 제1진 170명을 3척에 나누어 도하시켰다. 이때 후방 쪽에서 뱃머리를 돌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양헌수는 짐짓 목청을 높여 ‘소리친 자를 당장 잡아와 목을 쳐라’고 호통을 쳤다. 겁먹은 군사들의 동요를 막기 위한 임기응변이었다. 제1진이 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