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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침략을 막아낸 병인양요의 명장, 양헌수 장군 <병인일기>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서 활약한 명장으로, "서양과 싸워 이긴 유일한 조선인"이라는 타이틀로 유명하다. 양헌수의 『병인일기』는 1866년(고종 3) 음력 9월 3일(양력 10. 11) 국왕 비서실인 승정원(承政院)의 동부승지(同副承旨:정3품 당상관)에 임명되어 6방 중에서 공방(工房)의 업무를 관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때 양헌수는 양씨 시조의 탄생지인 제주에서 목사(牧使)로 근무하다가 국왕의 부름을 받아 비로소 중앙에 근무하게 된다. 공업(工業) 분야에 관련된 국무를 전문적으로 보좌하는 국왕 비서관에 임명되었다. 이 같은 요직에 근무하게 된 것은 그가 제주목사로 근무할 때 큰 재난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병인일기』의 주요 줄거리를 살펴보면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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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가는 삼각지’와 불세출의 가수 배호 나와 30년 넘게 인연을 맺었던 용산구 삼각지는 보통 2가지가 연상되는 곳이다.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 배호가 부른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며, 다른 하나는 1994년에 철거된 회전 입체 교차로다. 회전 교차로가 360도 원형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배호의 노래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전혀 상관없다고 한다. 배호를 불세출의 명가수로 만들어 준 ‘돌아가는 삼각지’ 는 작곡가 배상태가 만든 불후의 명곡이다. 그는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한 사나이가 아쉬운 발길을 돌려서 되돌아가는 상황을 연상하여 이 노래를 작곡했다고 한다. 더구나 1963년에 작곡된 ‘돌아가는 삼각지’는 1967년 4월 배호가 만 25세 때 앨범으로 발표되었다. 따라서 1967년 12월에 세워져 1994년에 철거된 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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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천 강씨에서 토착화 한 ‘제주 강씨’ 수년 전에 우연히 제주도 출신의 강씨 학생으로부터 자신의 조상이 제주도에 입도한 것이 신덕왕후의 친정 후손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황해도 신천(信川)을 본관으로 하는 강씨들이 그 멀고 먼 제주도에 정착한 까닭이 궁금해졌다. 조선 태조대왕 이성계의 왕비이신 신덕왕후는 신천 강씨다. 그리고 사실상 새 왕조가 건국된 후 최초로 왕비가 된 분이다. 이성계의 첫째 부인 한씨는 비록 6남 2녀를 낳았으나 조선 왕조가 건국되기 전 해인 1391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왕비는 아니었다. 제2대왕 정종이 즉위한 직후 자신의 생모 한씨를 신의왕후로 추존한 것이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는 신덕왕후 능침인 정릉(貞陵)이 있다. 태조는 끔찍이 사랑하던 신덕왕후 강씨가 1396년(태조5) 별세하자 당시 성 내인 중구 정동 옛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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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열도의 근친혼과 치아교정(치열이 고르지 못한 이유) 일본은 치아교정술이 매우 발달한 나라다. 그래서 한국 치과의사들이 그 기술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다녀오는 경우가 많다. 일본의 주요 도시를 여행하다 보면 치아교정 관련 간판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세계 최대의 치과병원도 일본에 있다고 한다. 이는 곧 치아를 교정하는 수요가 많다는 뜻이다. 일본인이 텔레비전에 비칠 때 유심히 보면 치열이 고르지 못한 사람이 매우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왜 일본인의 치열이 고르지 못한가. 먹는 음식과 연관이 깊거나 생태학적으로 유전인자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는 후자와 관련이 깊은 것으로 생각한다. 일본은 크고 작은 여러 개 섬으로 구성된 섬나라다. 육지인 대륙 국가와 인종적 교류를 했던 국가도 아니다. 우리나라도 섬에 버금가는 반도국이기는 하나 주로 전쟁에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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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19세기 조선(12) - 조선 조정이 수립한 비상대책 프랑스군의 수중에 떨어진 강화 유수부를 탈환하기 위한 대책은 10월 18일 중신회의에서 논의되었다. 각 도에서 모집한 의병을 서울로 집결시켜 대대적인 반격을 가한다는 전략이었다. 이에 따라 소모사를 전국적으로 파견하는 계획도 세웠다. 이 무렵 통진부도 프랑스 군에게 무혈로 점령당했다. 통진부의 주요 관수품이 약탈당하고 관아가 모두 불탔다는 보고를 받은 조정은 큰 충격을 받았다. 조선 조정이 처음부터 프랑스 함대를 적대시한 것은 아니었다. 프랑스 함대가 조선 영해를 침범하여 강화 해협을 거슬러 올라오자 수도 서울에 접근하기 전에 대화로 해결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그러나 이 방안은 10월 15일 강화성 동문이 프랑스 함대의 침공에 맥없이 무너졌기 때문에 무의미해졌다. 이에 조선 조정은 훈련대장 이경하와 총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