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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이야기/인물과 사건49

임진왜란, 그 고통의 기록(2)-Ⅱ 조경남 『난중잡록』의 체제 구성 저자 조경남 의병장의 후손들이 보관한 『난중잡록』 석인본 4권의 실제 망라기간은 총 27년 3개월이다. 이를 1977년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국고전총서』 제3집으로 영인·간행했다. 『난중잡록』 각권의 망라가간은 제1권:9년 8개월, 제2권:11개월, 제3권:5년 6개월, 제4권:11년 2개월이나 각 권의 분량은 거의 균등하게 배분되어 있다. 『난중잡록』 제1권의 임오년 기사는 12월 20일 단 하루 기사로서, 3개 태양이 동쪽에서 돋고 쌍무지개가 태양을 함께 꿰뚫었다는 기록아래 “내 나이 13살, 이 일에 대하여 느낌이 있어 비로소 일록(日錄)을 쓰게 되었다.”라는 주기를 달았다. 『난중잡록』을 쓰게 된 연유를 밝힌 것이다. 그리고 계미년(2월, 5월16일, 9월), 갑신·병술년(월별.. 2020. 12. 1.
임진왜란, 그 고통의 기록(2)-Ⅰ 조경남 『난중잡록』은 어떤 책인가 『난중잡록(亂中雜錄)』은 조선 중기에 유학을 공부한 조경남(趙慶男:1570~1641)의 저작물이다. 저자 조경남은 태종 대에 우의정을 지낸 한양 조씨 한평부원군 조연(趙涓)의 후손이며, 중종 조에 호조판서를 역임한 조숭진(趙崇進)의 현손이다. 1570년(선조3) 11월에 남원부 원천(源泉) 내촌리(內村里)에서 사직(司直) 벼슬을 한 아버지 조벽(趙璧)과 어머니 남원 양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경남의 자는 선술(善述)이며, 호는 산서(山西)·산서병옹(山西病翁)·산서처사·주몽당(晝夢堂) 등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산서잡록』·『산서야사』 등이라 하였다. 저자 조경남은 부인 경주 김씨와 혼인하여 세 아들 시영(時嬰)·시형(時亨)·시탁(時鐸)과 1녀를 낳았는데, 사위는 정인화(鄭仁和)다. 조경남은 6세에 아버.. 2020. 11. 27.
『쇄미록』 저자 오희문의 손자 오달제의 충혼을 모신 현절사 남한산성 벌봉에서 내려가다가 현절사(顯節祠)에 들렸다.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도로 건너서 산길을 100m쯤 가면 나타나는 현절사는 병자호란 이후 청의 심양에 끌려가서 순절한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충혼을 모신 사당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당과 부속건물이 몇 채 있는 소박하며 절제된 건축물이다. 삼학사 중에 한 분인 오달제(吳達濟) 선생은 임진왜란의 아픔을 절절히 기록한 『쇄미록』의 저자 오희문 선생의 손자다. 『쇄미록』과 함께 저자인 오희문의 가계에 관해서도 장남 오윤겸과 함께 블로그에 수차례 소개했었다. 장남 오윤겸은 인조 때 영의정을 역임한 명신으로 워낙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리고 병자호란 이후 청의 칼날 아래 절개를 굽히지 않고 순절한 ‘삼학사’의 한 분인 오달제 선생도 이.. 2020. 11. 24.
임진왜란, 그 고통의 기록(1)-Ⅳ 오희문 『쇄미록』의 사료적 가치 조선 중기 선비 오희문이 쓴 『쇄미록』은 자신과 가족의 피난 사실을 기록한 일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료적 가치는 높이 평가된다. 1962년 국사편찬위원회는 그 가치를 인정하여 「한국사료총서」 제14집으로 『쇄미록』 상·하 2책을 간행했다. 일기의 중간이나 책의 끝부분에는 그 시기와 관련이 깊은 국왕 및 왕세자의 교서, 의병의 격문과 통문, 명나라 참전 장수들의 패문, 각종 공문서 등이 첨부되어 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사료총서에는 「추록」이라 하여 별도 목차를 부여했다. 저자 오희문의 12대 맏손자 오정근이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오산리 자택에 보관하고 있던 수필 원본을 대본으로 하여 활자로 간행한 것이다. 그 후로 해주오씨 추탄공파 문중에서는 1990년에 한글로 번역하고 여기에 원문을 첨부하여 .. 2020. 9.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