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62 풍납토성과 도미부인 지인과 함께 자전저를 타고 풍납토성을 처음 돌아보았다. 아파트 사이사이로 토성을 발굴한 흔적들을 남겨 공원화 해 놓고 있었다. 천호대교 남단에는 풍납토성이 일부 복원되어 있었는데, 마치 저수지 제방 같은 느낌도 든다. 풍납토성이 백제의 위례성인지 아닌지 관련 학계의 이론이 좁혀지지 않고 있다. 광진교와 천호대교 남단에는 큰 공원이 조성돼있다. 광진교는 광나루에서 연유된 다리 명칭이다. 즉 이 부근에 광나루(광진)가 있었다는 뜻이다. 1974년 여름, 친구들과 수영을 하며 하루를 즐겼던 기억이 새롭다. 지금 공원 자리가 예전에는 강변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강폭이 많이 좁아지면서 수심도 깊어진 것 같다. 당시 강변은 수심이 완만하고 모래밭이 길게 발달하여 시민들의 여름 피서지로 이용되었다. 작은 보트를 빌.. 2020. 11. 29. 임진왜란, 그 고통의 기록(2)-Ⅰ 조경남 『난중잡록』은 어떤 책인가 『난중잡록(亂中雜錄)』은 조선 중기에 유학을 공부한 조경남(趙慶男:1570~1641)의 저작물이다. 저자 조경남은 태종 대에 우의정을 지낸 한양 조씨 한평부원군 조연(趙涓)의 후손이며, 중종 조에 호조판서를 역임한 조숭진(趙崇進)의 현손이다. 1570년(선조3) 11월에 남원부 원천(源泉) 내촌리(內村里)에서 사직(司直) 벼슬을 한 아버지 조벽(趙璧)과 어머니 남원 양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조경남의 자는 선술(善述)이며, 호는 산서(山西)·산서병옹(山西病翁)·산서처사·주몽당(晝夢堂) 등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도 『산서잡록』·『산서야사』 등이라 하였다. 저자 조경남은 부인 경주 김씨와 혼인하여 세 아들 시영(時嬰)·시형(時亨)·시탁(時鐸)과 1녀를 낳았는데, 사위는 정인화(鄭仁和)다. 조경남은 6세에 아버.. 2020. 11. 27. 『쇄미록』 저자 오희문의 손자 오달제의 충혼을 모신 현절사 남한산성 벌봉에서 내려가다가 현절사(顯節祠)에 들렸다.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도로 건너서 산길을 100m쯤 가면 나타나는 현절사는 병자호란 이후 청의 심양에 끌려가서 순절한 ‘삼학사(홍익한, 윤집, 오달제)’의 충혼을 모신 사당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사당과 부속건물이 몇 채 있는 소박하며 절제된 건축물이다. 삼학사 중에 한 분인 오달제(吳達濟) 선생은 임진왜란의 아픔을 절절히 기록한 『쇄미록』의 저자 오희문 선생의 손자다. 『쇄미록』과 함께 저자인 오희문의 가계에 관해서도 장남 오윤겸과 함께 블로그에 수차례 소개했었다. 장남 오윤겸은 인조 때 영의정을 역임한 명신으로 워낙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리고 병자호란 이후 청의 칼날 아래 절개를 굽히지 않고 순절한 ‘삼학사’의 한 분인 오달제 선생도 이.. 2020. 11. 24. 운남성 여행-(4) 옥룡설산의 그림자 흑룡담, 석림 1월 23일 아침에는 어제처럼 서두르지 않아서 약간 여유가 있었다. 이강 고성 북쪽에 깨끗한 물리 펑펑 솟아나는 호수공원인 흑룡담이 첫 코스다. 옥룡설산의 눈 녹은 물이 지하에서 솟아오르니 맑고 찬 물이다. 그 물위에 설산의 그림자가 비치자 사진 찍기 바쁘다. 아침 호숫가를 거닐며 심호흡을 하니 속이 후련한 느낌이 든다. 이제 운남성 여행의 종반부 코스에 접어들었다. 또 다시 ‘궁댕이 관광’이 시작된다. 곤명의 마지막 숙박지인 중황호텔까지 죽치고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는 관광이다. 밖에 보이는 주택의 흰색 벽면에 불꽃 모양의 그림으로 장식한 마을이 줄줄이 보인다. 불꽃을 형상화한 가로등도 있고, 가끔 올림픽 성화봉 같은 기둥모양의 불꽃도 보인다. 불을 숭상하는 소수민족이 살고 있다는 표시란다. 고속도로 휴.. 2020. 11. 20. 이전 1 ··· 35 36 37 38 39 40 41 ··· 6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