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신의주에서 압록강을 건너면 바로 도착하는 단둥, 현재 단둥으로 불리는 단동은 옛 고구려의 영토였다. 서기 668년 고구려가 신라-당의 연합군에게 멸망한 후로는 당나라가 안동에 치소를 둔 안동도호부를 설치했다. 그 후 발해가 건국되어 세력을 넓힐 때는 발해의 영토였다. 발해는 동북쪽으로 오늘날 러시아 연해주의 크라스키노와 우수리스크를 포함할 정도로 엄청나게 넓은 영토를 지배했다.
그 후로 여진족이 만주에서 발흥하여 후금을 세워 청으로 국명을 바꾸고 북경에 수도를 정했다. 이 때 자신들의 발원지인 만주를 신성한 지역이라 하여 봉금령을 내렸다. 아무도 못살게 하니 ‘무주공산’이 되었다. 그 후 1874년 봉금령은 해제되고, 1876년 안동현이 설치되었다. 과거 ‘안동도호부’에서 유래한 명칭이 지명이 된 것이다. 이 무렵 우리 선조들도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가서 드넓은 대지에 마음껏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이들의 도움을 받으며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하게 된다.
압록강 하구의 해상교통을 이용해 1903년 안동항이 개항되자 인근의 농수산물이 모여들었다. 오늘날 인천항에서 출발한 여객화물선이 주 3회 다니기도 한다. 1931년 만주 사변이 발발한 후 점령군으로 진주한 일본군은 청나라 마지막 황제 부의(푸이)를 대려다가 1932년 3월 1일 만주국을 세웠다. ‘푸이’의 일생을 다룬 영화가 널리 상영되면서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일제가 만주 땅을 지배하기 위해 세운 만주국은 외교권과 군사권을 일제에 위임한 허수아비 국가였다. 실세는 일제의 관동군 사령관이었다. 장춘을 ‘신경’으로 개칭하여 수도로 삼고 1934년 동북 4성을 14개 성으로 재편할 때 안동성(安東省)을 신설했다. 이때 안동은 성도가 되었다. 1937년에는 안동시로 승격했다.
1945년 일제가 패망하자 안동시는 중공 치하에 들어갔고, 6·25 전쟁 때 중공군이 참전하면서 병력과 전쟁물자의 주요 통로가 되었다. 연합군의 폭격으로 끊어진 압록강 철교 북단에는 참전기념물이 웅장하게 서있다.
안동시의 기차역은 ‘안동역’이었다. 일제 치하인 1940년 3월 오늘날 경북 안동시의 ‘안동역’을 중앙선 일부로 개통할 당시는 ‘경북안동역’이라고 하여 서로 구별한 적도 있었다고 한다. ‘경북안동역’은 광복 후인 1949년 7월에 비로소 ‘안동역’으로 제 이름을 찾았다. 1965년 단동시로 개칭되자 ‘안동역’도 ‘단동역’으로 바뀌었다.
소문에 의하면 북한 김일성이 중공 측에 개명을 요구했다고 한다. ‘안동’이라는 지명이 당나라가 고구려를 멸망시키고 설치한 ‘안동도호부’에서 유래해 ‘동쪽을 편안하게 한다’는 의미라서 불쾌하다고 개명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붉은색의 ‘단’이 ‘안’과 발음도 흡사하여 ‘단동(단둥)’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우리들의 작은 역사,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문도가 ‘해밀턴항’으로 서방 세계에 알려지다. (0) | 2020.09.06 |
---|---|
천연두 바이러스에 기습당한 18세기 조선 (0) | 2020.08.30 |
검단산을 내려가며 (0) | 2020.08.04 |
검단산을 올라가며 (0) | 2020.07.31 |
일본인의 한국(대륙) 콤플렉스 (0) | 2020.07.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