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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작은 역사, 일상

천연두 바이러스에 기습당한 18세기 조선

by 헬나이트 2020.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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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국왕 27명 중에서 최장기간 재위한 21대 왕은 영조 임금이시다. 숙종의 둘째 아들로 1694년 숙빈 최씨에게 태어났다. 어머니가 궁중 나인들의 수발을 드는 미천한 신분인 무수리출신이라는 사실 때문에 평생 스트레스를 받았던 왕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른바 사도세자로 더 잘 알려진 아들 장헌세자를 쌀뒤주에 감금하여 죽게 만든 왕이다.

영조대왕 어진(부분)

영조대왕(세종만 대왕이 아니고 조선의 모든 왕이 ‘00대왕’으로 기록됨)은 1776년 3월에 83세로 승하하셨다. 따라서 재위 기간도 역대 최고다. 1724년 8월에 즉위했으니 51년 7개월을 왕위에 있었던 것이다. 아들 장헌세자가 죽었으므로 손자인 정조에게 물려주었다. 정조 임금도 세자 시절에는 아버지 장헌세자처럼 할아버지 영조의 눈 밖에 날까 봐 노심초사 전전긍긍하며 숨죽이고 지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정조대왕 어진(부분)

이렇게 고구려 장수왕처럼 오래 재위한 탓인지 영조 재위기간에 탈도 많았다. 특히 역사에 ‘역질(疫疾)’로 기록된 천연두 바이러스에 의한 급성 전염병이 창궐하여 수많은 백성들이 목숨을 잃었다. 국왕은 백성의 수가 많아야 권위가 올라가는 법이다. 그런데 전염병 창궐로 두 달 연속 수 만 명씩 죽어나가니 그가 받은 스트레스는 얼마나 컸을까?

『조선왕조실록』을 참고해 보면 1733년(영조9) 7월 25일 기사에 전라도에서만 2,081명이 역질로 사망했다고 한다. 아마 7월 한 달 동안일 것이다. 8년 후인 1741년(영조17) 7월 13일 관서(關西)에서 3,700여 명이 죽었다. 1747년에는 농경에 필수인 농우도 역질에 걸려 황해도에서 한 달 동안 1,000여 두가 죽었다(11.11)

허준이 동의보감 후속으로 편찬한 전염병 의학서 '신찬벽온방'(허준박물관, 보물제1087-2호)

1750년(영조26)에도 역질이 창궐하자 1월 5일 영조는 “시신을 묻어 주는 것은 왕정(王政)의 큰 일이다. 더군다나 경외에 역질이 창궐하여 사망자가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 해는 이미 바뀌어 만물이 모두 봄기운을 타고 있는데, 아! 우리 백성들은 친척·형제·고아·과처(寡妻)가 울부짖고 서러워하니, 생각이 여기에 미치매 저절로 처절해진다. 경외에 분부하여 죽은 자는 방법을 다하여 거두어 묻어 주고 산 사람은 특별히 구원하여 살려내게 하라”라고 하교하였다. 그럼에도 7월까지 전국적으로 153,463명이 사망했다.

1750년 조선 전국 역질 사망자 현황

영조도 국왕으로서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8도에 중신을 보내서 여제(癘祭)를 지내도록 하고, “금년의 역질은 병란보다도 더 심하다. 만일 이대로 그치지 않는다면 백성이 다 죽어버리겠다. 두 번이나 제사를 지냈는데 일을 받든 사람이 어찌 정성을 다하지 않았을까마는--(중략)--일을 맡은 신하들은 임금의 부덕이라고만 말하지 말고 구원하고 진휼하여 특별히 마음을 더 기울이고 경외를 막론하고 받을 것은 가을의 추수 때까지 미루어라. 모든 공헌(貢獻)은 백성의 고혈(膏血)이다”라고 하교하였다.

영조(좌측)와 계비 정순왕후 김씨의 원릉(구리시 동구릉)

당시 영의정 조현명은 원적지 밖에서 떠도는 사망자를 합치면 30여만 명은 될 것으로 추정하고 “들판에 드러난 해골(骸骨)이 뒹굴고 있으며, 여염 마을에서는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으니, 이때가 어떤 시절입니까?”라고 탄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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