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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작은 역사, 일상

일본인의 한국(대륙) 콤플렉스

by 헬나이트 2020. 7.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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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은 항상 한국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다. 섬나라에 고립되어 살면서 이웃을 둘러보니 한국과 중국밖에 없다. 대만은 너무 멀고. 중국은 너무 커서 부담스럽고. 그런데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한국이 일본 열도보다 크기도 작고 인구도 적어서 아주 만만해 보인다. 주변 국가를 갈궈야 할 때 가장 적당한 대상이 한국이다. 가지고 놀기에 좋다. 특히 일본 국내 문제가 복잡해서 국민들 관심을 밖으로 돌리고 싶을 때 한 방 날려서 코피를 터트리기에 좋은 만만한 상대가 한국으로 보인다.

일본에서 가장 가까운 대륙이 대한민국이다.

이와 같은 구도는 일본 열도가 바다 속으로 침몰하거나 화산 폭발, 쓰나미 등으로 지구상에서 사라지기 전에는 깨지기 어려운 구도다. 혹시 한국이 통일국가가 돼서 동아사아 강국이 된다면 저 지겨운 구도가 깨질지도 모른다. 북한 김일성이 1950년 6월 25일 전쟁만 일으키지 않았어도 맥아더 유엔군 사령관의 계획대로 '영원한 농업 국가'가 되어 이웃을 괴롭히지 않고 평화롭게 잘 먹고 잘 살고 있을지 모른다.

원자폭탄을 맞고 폐허가 된 히로시마

맥아더는 패전국 일본을 영원히 전쟁을 할 수 없는 농업국가로 만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6·25 전쟁이 터지자 가장 가까운 일본에서 군수품을 생산할 수밖에 없었다. 맥아더의 당초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패망한 일본의 군수산업은 부활하고, 국가 재건의 기회가 되었다. 이것도 결국은 한국의 불행이 일본의 행운이 된 결과다. 즉 ‘한국이 불행해야 일본이 잘 된다’는 공식을 재확인한 것이다.

일제는 “내선일체(內鮮一體)”를 부르짖었다. 내=일본, 선=조선이다. 일본과 조선이 한 몸이라고 말하면서도 그들의 행동은 항상 차별적이었다. 미개하고 더럽고 무식하고 분열하고 시끄럽고 거짓말 잘하고 등등 부정적인 것은 모두 조선인에게 뒤집어 씌웠다. 반면에 지들은 항상 깨끗하고 조용하고 검소하고 겸손하고 예의 바르고 의리 있고 정직하고 유식하고 등등 좋은 수식어는 모두 독점했다. 저들의 이중성을 잘 보여주는 허구뿐인 ‘내선일체’다.

일제의 '내선일체' 사상교육 현장

고인 물은 썩는 법이다. 대륙으로부터 침공을 받지 않은 일본은 인종적 교류도 없었다. 대륙인들이 이주해온 경우도 거의 없었다. 그러니 섬 안에서 동종교배만 장기간 이루어져 열성 DNA가 많이 축적되었다. 섬에 고립된 일본인은 대체로 포악하고 잔인하다. 그것을 내면에 꼭꼭 숨기고 있을 뿐이다.

이웃에 사는 한국인들은 하도 당해서 일본인들의 특성을 잘 안다. 하지만 멀리 있는 서양인들은 번지러 한 일본의 겉면만 본 것이다. 애완견도 묶어두고 키우면 사나워지는 법이다. 섬에 갇혀 사는 일본인은 고인 물처럼 스트레스가 쌓여 포악하고 사나워질 수밖에 없다. 설상가상 근친혼도 나쁜 DNA가 쌓이는데 크게 기여하고 있다.

중국대륙을 침공한 후 남경(난징)에서 대학살을 자행했으나 사실을 부정하고 있다. 끔찍한 학살 현장을 주머니에 손 넣은채 웃으며 지켜보는 일본인(군)

일본이 언제부터 선진국이었나. 언제부터 한국보다 문명국이었나. 일본이 선진국과 문명국의 출발선에 선 것은 불과 150여 년 전인 19세기 중후반부터다. 일본의 근대국가 출발 기점을 1867년 왕정복고가 이루어지는 19세기 중후반 ‘명치유신(메이지유신)’이 시작된 시기부터로 본다. 이 이전 고대-삼국-고려-조선시대까지 일본은 우리에게서 대륙문물을 받아갔다.

조선 통신사가 일본 열도에 상륙해 숙박하는 곳마다 소위 일본 지식인이라는 자들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엉성한 한시 몇 줄 써가지고 와서 좀 읽어달라고 졸랐다. 한 수 배우고 싶어 하는 그들의 열망이 가상하다. 수 천년 수 만년 중에 근래 150년 정도 좀 앞서 가고 있는 거 아닌가. 그게 영원히 계속되어야 하는 법이 있나.

조선통신사를 극진히 맞이하는 에도 주민들(고베시립박물관 소장)
일본에 입국한 조선통신사를 호위하는 일본 무사들(조선통신사 행렬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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