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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겸전한 선대 가계의 전통을 계승할 양헌수는 순조 16년(1816) 12월 18일 경기도 양평군 지평 광탄리(양평군 용문면)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유학에 입문하여 기초를 다졌다. 13세 때인 1828년 학문 세계를 더 한층 넓히기 위해 새로운 스승을 찾아갔다. 이때부터 양헌수는 당대의 거유로 명망이 높던 화서(華西) 이항로(李恒老:1792~1868)의 문하에서 유학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와 함께 동문수학한 김평묵(金平黙)․유중교(柳重敎)․최익현(崔益鉉) 등은 모두 문인 학자로 이름을 떨쳤다. 이들은 춘추대의(春秋大義)와 존왕양이(尊王攘夷)의 사상체계를 바탕으로 하는 위정척사론(衛正斥邪論)을 주창한 공통점이 있다.
양헌수는 15세 때인 1830년(순조30) 군수 이행검(李行儉)의 딸인 고성 이씨와 혼인했다. 그러나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을 외면한 채 학업에만 전념할 수 없었다. 가장으로서 새 진로를 모색하던 양헌수는 ‘장차 학문을 하려고 하나 어버이께서 연로하시어 봉양할 수 없으니, 나는 벼슬하는 학문을 하겠노라’ 고 결심한 후 진로를 바꾸었다. 문과에서 무과로 전과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뜻을 부모와 스승에게 알리고 승낙을 얻자 이때부터 말 달리며 활을 쏘는 무인의 수련을 쌓기 시작했다. 그 결과 33세 때(1848, 헌종14) 무과(武科)에 급제하여 관료의 길로 들어섰다.
연관글 링크:
2020/03/02 - [역사/전쟁이야기] - 서양의 침략을 막아낸 병인양요의 명장, 양헌수 장군의 <병인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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