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분류 전체보기262 5.조선전기 성곽 축조와 공방전 양상(2) 조선은 16세기 말 해양세력 일본의 대규모 침략(임진왜란)을 받고 산성이나 읍성에서의 공방전을 이용해 상륙을 저지하거나 북상을 억제하지 못했다. 특히 읍성은 소규모 왜구의 기습적 노략질에는 신속히 대응할 수 있었으나, 임진왜란과 같은 전면 침공 때는 무용지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전쟁 발발 후 불과 2개월이 경과한 6월에는 평양성을 점령한 일본군을 몰아내기 위해 명군과 조선군이 공성전을 전개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일반적으로 북쪽에서 남침하는 적을 방어할 때와는 정반대로 공성과 수성이 뒤바뀐 것이다. 그러나 첫 공방전에서는 성문을 열어 놓고 유인하는 일본군의 대담한 작전에 말려들어 실패하게 된다. 일본군의 북상을 저지하기 위해 참전한 명군과 조선군의 평양성 공성전은 1593년 1월 다시 전개되었다. 명.. 2020. 6. 30. 중국 대련에서 백두산까지-3 2019년 9월 24일 아주 이른 새벽에 통화에서 백두산으로 출발하여 서파(한국 관광객은 주로 이도백하에서 숙박하고 북파로 많이 올라감)로 올라가서 천지를 관상했다. 2012년에 북파로 백두산을 올랐지만 서파는 처음이다. 이제 남파로 올라가는 과제가 또 하나 생겼다. 너무 좋은 날씨라고 모두들 야단이다. 천지를 몇 번씩 와도 날씨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주변 사람들의 말이 전혀 이해되지 않을 정도였다. 천지를 내려다보면서 수 없이 사진도 찍고, 둘러앉아 건배도 했다. 이런 기회가 또다시 올지 안 올지. 2020. 6. 28. 5.조선전기 성곽 축조와 공방전 양상(1)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평안도와 함경도의 주요 거점에 축성하여 요새화했다. 그리고 북방민족의 특기인 기병전술에 대응해 장병전술을 발전시켰다. 전 왕조인 고려 말기부터 서남해안 일대에서 왜구의 침략이 빈번했으나 국가의 안위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다. 따라서 조선 초기부터 주로 연해 지역에 소규모 읍성을 견고한 석성으로 개축하여 대비했으나, 국가적 관심은 여전히 북쪽에 집중되고 있었다. 전통적으로 한반도에서 산성은 청야입보 기능을 최우선으로 하며, 인마의 출입이 불편한 지형과 지세가 가장 중요한 입지 조건이었다. 즉 산림이 울창하고 벼랑과 바위가 많으며, 식수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지형이 최적지였다. 이 같은 지형은 수성군에게 은폐와 엄폐를 제공해 주지만 공성군에게도 유리한 조건이다. 따라서 공성부대는 성.. 2020. 6. 26. 아! 6월 25일-6·25 전쟁 70주년 특집-"왜 6월 25일인가? 왜 한국전쟁인가?" 오늘이 6·25 전쟁 발발 70주년이다. 우리는 ‘6·25 전쟁’이라고 부르지만,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Korean War)'으로 부른다. 유엔군이 대거 참전하면서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이라는 의미로 부르다가 고정 명칭으로 굳어진듯 하다. 우리 선조들은 역사적 주요사건에 주체를 분명히 하는 명칭을 부여했다. 예컨대 ‘임진왜란(임진년에 왜놈이 일으킨 난리)’ ‘병자호란(병자년에 오랑캐가 일으킨 난리)’ ‘이괄의 난(이괄이 일으킨 반란)’ ‘병인양요(병인년 서양 오랑캐들의 소요사건)’ '임오군란(임오년에 군인들이 일으킨 소요사태)' 등은 난리나 반란 혹은 소요를 일으킨 집단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주체적 입장에서 명칭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6·25전쟁’이나 ‘한국전쟁’은 전쟁을 일으킨 집단이 누구인지.. 2020. 6. 25. 이전 1 ··· 50 51 52 53 54 55 56 ··· 66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