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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이야기/전쟁이야기

세균전 관련 일제 전범 공판기록(발췌)-Ⅱ

by 헬나이트 2020. 10.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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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심문건 --(이하 생략)--

기소장

다년간 제국주의적 일본은 극동에서 주요한 침략발원지로 되어있었다.--(중략)--이러한 침략전쟁은 일본 지배하의 식민지국가인 소위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共榮圈)」을 창설하려는 목적을 가졌던 것이다.--(중략)--일본제국주의자들이 소련 및 기타 여러 국가에 반대하여 침략전쟁을 획책준비하면서 자기의 목적을 달하기 위하여 범죄적인 대중적 살인제인 세균전무기를 대규모적으로 사용하려고 예상하였고 또 부분적으로는 사용하였던 사실이 본사건 예심에 의하여 판명되었다.

일제가 사용했던 세균폭탄(발굴)

세균전쟁 준비 및 진행을 위한 특별부대 조직

취조에 의하여 판명되었음과 같이 일본참모본부와 육군성은 만주점령 직후에 만주일대에 일본에서 저명한 세균전 주창자로서 추후 육군 군의 중장이었던 이시이 시로를 주뢰자로하여 세균실험실을 설치하여 일본관동군에 부속시켰는데 이 실험실에서는 세균공격전 진행에 급성유행병균을 이용하는 방안을 연구하였다.

무죄 판결받은 제731부대장 이시이 시로

피고인 전(前)일본 육군 군의 소장 가와시마 기요시의 진술에 의하면 일본참모본부 및 육군성은 천황 히로히토(裕仁)의 비밀칙령에 의하여 1935-1936년간에 벌써 만주지대에 세균전 준비 진행의 사명을 가진 2개의 극비밀 세균부대를 조직하였던 것이다.

임석 상관으로서 단상에 선 히로히토 

비밀을 지키려는 목적으로 그 중 1개 기관 즉 이시이 실험실을 토대하여 조직된 기관은 「관동군 방역급수부」, 1개 기관은 「관동군 군마방역국」이라 칭하였다. 1941년에 히틀러 독일이 소련 침공을 개시한 이후 첫 기관은 「제731부대」, 둘째 기관은 「제100부대」라 개칭하였고 「제731부대」에는 위에 말한 이시이 시로, 「제100부대」에는 육군 수의 소장 와카마쓰를 부대장으로 임명하였다.

세균전 특화부대인 제731부대 사령부 전경(1939년 완공, 흑룡강성 하얼빈시)
제100부대(전신:관동군 군마방역국) 건물 유적(사체 소각로로 보이는 높은 굴뚝) 

이 두 부대는 세균학전문가들로써 편성되었는데 그 인원 중에는 일본의 유수한 세균학자들의 지도 밑에 있는 학술직원과 기술직원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이 두 세균부대의 사업범위가 어떠하였는가 함에 대해서는, 부분적으로는, 제731부대 한곳에만 근 3천 명 직원이 있었다는 사실이 증명해 준다.

동경대학회에 참석한 제731부대장과 세균학자, 의사들(부분 사진)

일본군 사령부는 세균전쟁용 무기를 제조하는 부대의 유지비로 자못 거액의 재정을 지출하였다. 그리하여 제731부대를 확장하기 위하여 1939년 경에 하얼빈서 약20킬로미터 밖에 있는 평방(平房)역 부근에 다수의 실험실과 청사를 가진 큰 군용시가를 건축하였다. 다량의 원료도 준비되었었다. 공작의 극비밀을 보장하기 위하여 시가의 주위에 금지지역을 설정하였다. 부대에는 소유 비행대가 있었고 안달(安達)역에 특별 연습장이 있었다.

평방의 금나라 고성 터에 설치된 야외실험장

100부대도 장춘시 남방 10킬로미터 거리에 있는 맹가둔(孟家屯)이란 촌 부근에 역시 광활한 청사와 기계장치 및 지단을 가지고 있었다.

하바로프스크 전범재판정에 끌려온 제100부대 군조 미도모 가즈오(앞줄 왼쪽)와 학술직원 중위 히라자쿠라 젠사쿠(앞줄 오른쪽)

제731부대 및 제100부대는 조밀한 지부망(支部網)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지부들은 관동군 각 부대 및 집단에 소속되었고 소련 국경의 여러 주요전략방향에 분포되어 있었다(제14권 문건 제29호). 

각 지부의 기본임무는 부대에서 제조된 세균무기를 전쟁에 실지로 이용할 것을 준비함에 있었다. 세균부대 또는 그 지부들은 일본 관동군 총사령관에게 직속되어 있었다.--(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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