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학설이 있기는 하나, 대체로 영국에서 기존 종교에 염증을 느낀 이른바 청교도들이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와 미국을 건설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적어도 영국에서 대서양을 건너올 때 그들 나름의 뚜렷한 가치체계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정의롭지 못한 일에 대해서는 힘을 모아 대응했다. 그것이 곧 자신들이 신대륙을 찾아 영국을 떠나 온 이유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예컨대 벤치에 앉아 햇볕을 쪼이던 할머니가 우연히 불법(위법) 행위를 목격하면 즉시 경찰에 신고하는 고발정신도 청교도 정신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고발정신이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다. 아마 동양식 사고방식에서는 고자질하는 사람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 미국이라는 아메리카합중국이 세계 최고국가로서 위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청교도 정신이 녹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정신이 살아있는 이상 미국은 세계 최강국이며 선진국으로서 위상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국가도 나이가 들면 늙는 법이다. 그러나 청교도 정신으로 무장한 미국은 늙어도 아주 천천히 늙을 것이다. 아니 항상 젊은 피로 있을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 부국이고 군사적으로 강국이라고 해서 모두가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다. 선진국은 국민의 의식 수준이 중요한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우리 좌우의 이웃 나라 국민들이 하는 짓을 보면 알 수 있다. 여전히 초강대국으로 위상을 유지하는 미국은 어떤가. 비록 작은 사례지만 이 질문에 근접한 여러 답 중에 하나가 될지도 모르겠다.
미 공군의 딘 헤스(Dean E. Hess) 대령은 6·25전쟁에 참전해 불과 1년여 동안 F-51 머스탱 전투기로 250회 전투 출격을 감행하는 초인적 힘을 쏟은 인물이다. 그리고 한국 공군 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 기독교 정신을 널리 전파할 목적으로 넓은 아메리카 대륙을 빨리 돌아다니기 위해 비행기술을 배웠고, 독일에서 고아원을 오폭한 과오를 속죄하기 위해 목사가 되었다고 한다.
딘 헤스는 미국 오하이오주 마리에타에서 1917년에 태어났다. 향년 98세로 2015년에 서거했다. 그의 일대기는 오래전에 영화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전쟁의 절박한 상황에서도 어린 전쟁고아들을 외면하지 않는 딘 헤스와 그 동료들의 의로운 행동은 곧 미국인들의 정신세계를 엿볼 수 있는 좋은 사례가 아닌가 싶다.
당시 33세 헤스 대령은 미 제5공군 군목인 러셀 블레이즈델(Russell L. Blaisdell : 1910∼2007) 대령(당시 중령)과 함께 김포 비행장에서 고아 1천여 명을 비행기에 태워 제주도로 후송했다. 당시 동원된 C-54 수송기 15대는 모두 제5공군의 군용기였다.
딘 헤스 대령과 그의 동료들이 보여준 이 같은 행동이 곧 청교도 정신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계 어느 나라 국민이 남의 나라 전쟁터에 들어와 목숨 걸고 싸우면서 그 와중에 고아들을 모아 군용기를 동원해 안전한 곳으로 이송하고 먹이고 입히며 보살피겠는가?
우리 주변국은 물론 유럽의 유수한 선진국들에게서도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까. 딘 헤스가 천수를 누리고 서거한 2년 후인 2017년 제주도에 딘 헤스 대령과 그 동료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현창하고 추모하는 기념비를 제막하기에 3월 9일 행사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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