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역사와 이야기/인물과 사건

격동의 19세기 조선(4) - 몰락한 가난뱅이 왕손이 새 국왕

by 헬나이트 2020. 8. 18.
728x90
반응형

 

1863년 12월 철종이 재위 14년 만인 33세에 승하한 후 추대된 새 국왕은 세자나 왕자 중에서 계승한 경우가 아니다. 이 때문에 그들과 차이점이 많았다. 일반 백성이나 다름없이 궁핍한 야인 생활을 하던 몰락한 왕손의 12세 소년이 용상에 앉는다는 사실이 서울 장안은 물론 전국적 관심을 끌 수밖에 없는 큰 사건이다.

해와 달이 그려진 '일월오악도'를 배경으로 국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어좌(근정전)

특히 도성과 인접한 서울 장안에서 새 국왕이 될 소년이 입궐하는 행차는 근래에 없는 큰 구경거리가 아닐 수 없다.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입궐하는 행차를 구경하기 위해 수많은 도성 주민들이 몰려들었다. 일부는 호위 군사들에게 제지를 받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기록한 『근세조선정감』에 의하면 구경 나온 도성 주민들이 군사들에게 강압적인 제지를 당하자 이를 목격한 소년 국왕 이명복이 원상 정원용을 불러 질책했다고 한다. 도성 주민들이 용상에 오르기 위해 궁궐로 가는 예비 국왕의 행차를 보려는 것은 곧 자신에 대한 애정 때문인데 함부로 겁박해서는 아니 되며, 추운 날씨에 상해를 입는 주민들이 생기지 않도록 아예 통제하지 말라는 파격적인 지시를 내린 것이다.

조선후기 학자 박제경이 흥선대원군 집정 전후에 관하여 서술한 대표적 야사집(상권만 간행, 한국학중앙연구원)

이에 대신들이 그의 뜻에 따라 군사들에게 지시하고, 구경나온 주민들에게도 전달하자 새 국왕의 너그러운 처사에 기뻐하며 환호를 질렀다고 한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다른 주민들도 그의 인간적인 면모에 한껏 기대감을 높이며 기뻐했을 것이다. 이와 같이 흥선군의 둘째 아들 이명복은 입궐 과정에서부터 서울 도성에 화제를 뿌리며 온 도성민들의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시흥환어행렬도] 정조가 화성에서 창경궁으로 돌아오는 행렬도 부분(국립중앙박물관)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