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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작은 역사, 일상

아! 6월 25일-6·25 전쟁 70주년 특집-"왜 6월 25일인가? 왜 한국전쟁인가?"

by 헬나이트 2020.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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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6·25 전쟁 발발 70주년이다.

우리는 ‘6·25 전쟁’이라고 부르지만,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Korean War)'으로 부른다. 유엔군이 대거 참전하면서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이라는 의미로 부르다가 고정 명칭으로 굳어진듯 하다.

남으로 남으로 진격하는 북한군, 흔히 보는 대표적 남침 사진

우리 선조들은 역사적 주요사건에 주체를 분명히 하는 명칭을 부여했다. 예컨대 ‘임진왜란(임진년에 왜놈이 일으킨 난리)’ ‘병자호란(병자년에 오랑캐가 일으킨 난리)’ ‘이괄의 난(이괄이 일으킨 반란)’ ‘병인양요(병인년 서양 오랑캐들의 소요사건)’ '임오군란(임오년에 군인들이 일으킨 소요사태)' 등은 난리나 반란 혹은 소요를 일으킨 집단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주체적 입장에서 명칭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6·25전쟁’이나 ‘한국전쟁’은 전쟁을 일으킨 집단이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는 모호한 명칭이다. 당시 국제적으로 유엔이 인정한 한반도 내의 합법 정부는 ‘대한민국’이다. 그러면 한반도 내의 불법집단이 일으킨 전쟁의 성격이 명확해 진다. 우리 입장에서 명칭을 정립해야 한다. 1950년은 경인(庚寅)년이다. 

이것이 명분론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쟁은 명분이 중요하다. 그래서 어느 한쪽은 반드시 거짓말로 명분을 세우려고 한다. 증거가 명확한데도 ‘북침’이라고 빡빡 우기는 이유다. 레닌이 했다고 전해지는 “거짓말도 100번 하면 진실이 된다.”라는 말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이 왜 6월 25일을 남침일로 정했냐고 물으면 대부분 사람들은 ‘일요일이라서 정했다’라고 대답한다. 나도 얼마 전까지는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데

김일성과 소련 군사고문단은 “광복 5주년 기념일인 1950년 8월 15일 이전에 한반도 전역을 점령해 군사작전을 종결한다.”라는 목표를 먼저 세웠다고 한다.

6.25직전 북한군이 작성한 남침작전지도

“하루 평군 10㎞씩 진격할 경우 50일 이내에 남한 전역을 점령할 수 있다”라는 가정 아래 작전 종료 목표일인 8월 15일부터 50일을 거꾸로 계산하니 6월 25일이었고, 마침 일요일이어서 기습의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했단다.

북한군의 남침 작전명은 폭풍이었고, 무전기로는 ‘224’ 신호가 타전되면 남쪽으로 포격을 개시하라는 신호로 정했다고 한다. “전화로 폭풍 또는 무전기로 ‘224’ 신호가 전해지면, 남쪽을 향해 포격을 시작한다.”라는 사전 약속에 따라 1950년 6 25일 새벽 4시에 포격이 시작된 것이다.

휴전선에서 부산까지 500㎞도 안 되니 하루 10㎞씩 남진하면 50일 이내에 남한 전역을 충분히 점령하고, 광복절 5주년 기념식을 1950년 8월 15일 서울에서 거창하게 치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참고문헌 : 최용호 지음, 응답하라! 1950 대한민국, 무슨 일이 있었는가?, 도서출판 전쟁과평화, 201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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