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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이야기/인물과 사건

충장공 양헌수와 병인양요(9)-무인 양헌수의 독특한 문집 『하거집』

by 헬나이트 2020.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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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이른바 ‘문집’으로 불리는 개인의 문학 작품집은 문인 학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따라서 무인의 문집은 매우 드물었다. 양헌수는 유학을 전공하다가 무인이 되었지만 항상 책을 가까이했다. 유학자의 습성을 지닌 무인이었기에 군수․목사․병사․어영대장․좌포장․형조판서․금위대장․공조판서 등의 관직을 거치면서 『하거집(荷居集)』을 남길 수 있었다.

여느 무인들과는 달리 양헌수가 남긴 『하거집』은 다양한 장르를 통해 문무겸전한 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양헌수가 견지했던 선비로서의 학문적 자세에 대해 영선사로 잘 알려진 김윤식은 ‘무인의 수련을 쌓기 위해 아침에 집을 나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길을 걸으며 『대학(大學)』을 암송하고, 날이 저물어 돌아올 때는 『중용(中庸)』을 외우는 ‘공부벌레’였다고 회고했다.

이는 무인 출신인 양헌수가 소(疏)․계(啓)․책(策)․격(檄)․보(報)․감결(甘結)․검제(檢題)․전령(傳令) 등 관직 생활과 관련된 저술을 포함해 시(詩)․서(書)․서(序)․기(記)․문(文)․설(說) 등의 문학적 장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저술을 남길 수 있었던 학문적 배경이었다.

하거집 전질(한장본)

그는 자를 경보(敬甫), 호를 하거(荷居)라 하였다. 그래서 평생의 저술을 모은 작품집도 『하거집』이라 불렀다. 1883년 3월 10일자로 쓴 양진화(梁鎭華)의 『하거집』서문에 ‘하거자(荷居子:하거 선생)’라고 호칭한데 연유한다. 따라서 『하거집』은 이미 양헌수 생전에 양진화에 의해 편집이 완료된 것으로 보인다.

그 후 필사본 상태로 후손에게 전해졌다. 양헌수의 현손(玄孫:5세손)인 양휘석(梁徽錫, 2007년 작고)이 물려받아 보관한 것이 유일본이다. 1997년 국방군사연구소(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서 『병인일기(丙寅日記)』와 합본하여 ‘군사사연구자료집’ 제5집으로 영인 간행하였다. 그리고 양휘석의 노력으로 한글 번역이 완료되어 2005년 간행되었다.

하거집.병인일기 영인본(1997, 국방군사연구소 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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