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5년 이후 언젠가 『난중잡록』을 보완할 때, 웅치전투의 상황을 상세하게 묘사한 이 글을 삽입함으로써 내용을 한층 풍부하게 한 사례다. 저자 조경남 의병장의 이 같은 편집 방법에 의하면 『난중잡록』은 비교적 오랜 기간 동안 수정·보완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예컨대 전주의 경기전에 모시고 있던 어영(御影)을 옥구에서 뱃길로 피난시켰다가 1614년 9월 18일에 다시 전주로 옮겨왔다는 기록은 이때까지도 『난중잡록』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었음을 짐작케 하는 단서다.
『난중잡록』 제2권은 임진년 8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불과 11개월 기록인데, 4권 중에서 가장 적은 분량이다. 그러나 11개월 기간으로 제3권의 5년 6개월 기록 분량과 비교하면 4배며, 제4권에 비하면 무려 9배 많다. 이는 제2권의 내용이 『난중잡록』의 중심적 기록이라는 사실을 반증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2권의 특징적인 내용은 호남을 지키기 위해 활약한 의병과 관군의 격문, 통첩, 이들의 구체적인 활동 내력, 이를 격려하는 국왕의 교서 등을 기록한 것이며, 『경상순영록』을 인용하지 않은 경우가 많은 것도 주목된다.
예컨대 남원부사 윤안성, 좌의병장 임계영, 충청의병장 조헌, 승장 영규, 전라의병장 최경회, 김천일, 전라감사 권율, 의병장 고종후 등에 관한 기록이 많이 보인다.
특히 저자 조경남 의병장의 스승이기도 한 조헌이 영규 등과 함께 8월 19일에 제2차 금산성 전투에 실패하여 전사한 후 1595년(선조28)에 윤근수가 지은 전적비의 비문을 수록한 것은 전투 내용을 보완하는 것과 동시에 그 업적을 현양하려는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임진년(1592) 12월부터는 『난중잡록』 기록량이 매우 간략해 지고 있으며, 제2권의 후반부인 계사년(1593) 6월까지의 기사는 더욱 간략하다. 명나라 제독 이여송의 주력부대가 1592년 12월 25일 압록강을 건너 본격적으로 참전하게 되자 명군과 관련된 기록이 자주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계사년(1593) 2월 행주산성, 6월의 제2차 진주성 전투를 주요 기록으로 남겼다. 제2차 진주성 전투는 저자 조경남 의병장이 많은 지면을 할애하여 전투 과정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서 참고할 내용이 특히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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