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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이야기/인물과 사건

임진왜란, 그 고통의 기록(2)-Ⅱ 조경남 『난중잡록』의 체제 구성

by 헬나이트 2020. 1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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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조경남 의병장의 후손들이 보관한 『난중잡록』 석인본 4권의 실제 망라기간은 총 27년 3개월이다. 이를 1977년 민족문화추진회(현 한국고전번역원)에서 『한국고전총서』 제3집으로 영인·간행했다. 『난중잡록』 각권의 망라가간은 제1권:9년 8개월, 제2권:11개월, 제3권:5년 6개월, 제4권:11년 2개월이나 각 권의 분량은 거의 균등하게 배분되어 있다.

『한국고전총서』 제3집으로 간행된 『난중잡록』

『난중잡록』 제1권의 임오년 기사는 12월 20일 단 하루 기사로서, 3개 태양이 동쪽에서 돋고 쌍무지개가 태양을 함께 꿰뚫었다는 기록아래 “내 나이 13살, 이 일에 대하여 느낌이 있어 비로소 일록(日錄)을 쓰게 되었다.”라는 주기를 달았다. 『난중잡록』을 쓰게 된 연유를 밝힌 것이다. 그리고 계미년(2월, 5월16일, 9월), 갑신·병술년(월별 구분 없이 기록), 정해년(2월, 9월), 무자년(1월), 기축년(9월, 12월), 경인년(2월, 8월, 12월), 신묘년(2월, 6월)까지의 기사도 매우 소략하다.

쌍무지개(안:1차 무지개 혹은 수무지개, 밖:2차 무지개 혹은 암무지개)

그러나 임진왜란의 발발한 임진년 4월의 경우는 14일부터 30일까지 17일간 매일 기술함으로써 일기 형식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기록량도 크게 증가했다. 임진년 4월부터 7월까지의 기사를 「상」으로 분류하여 제1권 95면 중에 79면에 걸쳐(83%) 수록하고, 8월부터 12월까지는 「하」로 나누어 제2권에 계사년 6월까지의 기사와 함께 실었다.

임진왜란 발발 초기 상황을 그린 기록화(왼쪽:부산진순절도,보물 391호 오른쪽:동래부순절도,보물 392호. 육군박물관 소장)

제3권에 계사년 7월부터 정유·무술년까지를 수록하고 있으므로, 임진년 전쟁발발부터 무술년 종전까지 7년간의 기사가 『난중잡록』 제1권부터 제3권까지 대부분을 차지하는 셈이다. 총 374면 중에서 259면에 해당하는데(67%), 이 중에서도 특히 임진·계사(171면), 정유·무술(46면) 4년의 기록(217면)은 27년(374면)의 기록 중에서 58%를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높다.

저자 조경남 의병장은 자신이 호남과 영남사이에 있는 남원부에 살고 있으므로 호·영남과 남원부의 관련 사실을 『난중잡록』에 매우 상세하게 기록하였다고 밝혔다. 그 중에서도 남원부를 중심으로 하는 호남일대의 사실을 더욱 자세하고 정확히 기록할 수 있었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영남에 관한 기록은 『경상순영록』의 내용을 인용한 부분이 적지 않다. 이러한 경우에는 인용한 기사의 말미에 자신의 견해를 간략히 부기하는 형식이 자주 보이는 것도 『난중잡록』의 특징이다.

사각형의 평지성인 남원부성과 인근의 교룡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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