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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이야기/인물과 사건

임진왜란, 그 고통의 기록(2)-Ⅲ 조경남 『난중잡록』의 주요 내용(三)

by 헬나이트 2020. 1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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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조경남의 『난중잡록』 제3권은 계사년 7월부터 5년 6개월의 기록인데, 외형적으로는 분량이 가장 많다. 계사년 후반부는 강화회담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왜군과 명의 지원군 일부가 철수하여 본국으로 돌아가는 상황이었다. 전쟁이 소강상태가 되면서 호남지방으로 들어온 명나라 장수와 군대에 대한 기록이 크게 증가했다.

명나라 부총병 양원이 조명 연합군으로 방어하다가 패전한 남원읍성(사적 제298호)

명나라 장수 사대수가 남원에 진주하였을 때 저자 조경남 의병장이 그들에게 질문한 부분은 남다른 관심을 가졌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송대빈의 군사가 기병인 이유는 북방지역의 군사이므로 기병전술을 구사하는 북방민족을 대적하기 위함이며, 낙상지의 군사가 보병인 까닭은 그들이 남방지역 군사이므로 총과 칼을 주 무기로 하는 적에게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질문을 통해 파악하게 된 것이다. 저사 조경남 의병장의 남다른 관찰력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북방 기병을 지휘한 총사령관 이여송 초상화
낙천근이란 별명으로 보병인 남병을 지휘한 낙상지(KBS 드라마 장면)

계사년 말경에 조정에서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인재를 선발한 방법과 선발 인원수 등도 자세히 나타나있다. 광주 의병장 김덕령에 관한 기사도 유난히 자주 나타나는데, 그와 관련한 주요 자료라고 할 수 있다. 김덕령의 통문, 김덕령에게 내린 교지, 김덕령 의병의 이동경로 및 주요 활동, 이몽학의 반란과 그 모함으로 김덕령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 등을 자세히 기록하였으나, 그의 죽음에 대해서는 아무런 의견도 부기하지 않았다.

의병장 김덕령 장군 묘소(광주광역시 금곡동)

정유년에 이르러서는 왜군의 재침과 이순신의 삼도수군통제사 교체, 백의종군 내력, 원균 통제사의 전사 등과 같은 수군 관련 기사가 비교적 자세하다. 원균 통제사를 비난하는 무리들에 대해 저자 조경남 의병장은 ‘전장에서 전사한 원균에게 죄를 준다면, 적을 피해 도망이나 다니면서 목숨을 부지한 자들에게는 무슨 죄를 주어야 할 것인가’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는 저자의 균형 있는 비판의식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가 아닌가 싶다.

원균 장군의 시신을 대신해 초혼한 신발을 매장한 묘소(경기 평택 도일동)

정유재란에서는 왜군들이 조선인의 코를 베어서 전후 수 십 년간 코 없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었다는 『난중잡록』의 기록은, 코무덤(비총)을 오늘날까지 귀무덤(이총)이라고 왜곡하는 일본 역사를 바로 잡을 수 있는 좋은 증거 자료가 될 것이다.

일본이 귀무덤(이총)이라고 우기는 코무덤(일본 교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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