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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천 강씨에서 토착화 한 ‘제주 강씨’ 수년 전에 우연히 제주도 출신의 강씨 학생으로부터 자신의 조상이 제주도에 입도한 것이 신덕왕후의 친정 후손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황해도 신천(信川)을 본관으로 하는 강씨들이 그 멀고 먼 제주도에 정착한 까닭이 궁금해졌다. 조선 태조대왕 이성계의 왕비이신 신덕왕후는 신천 강씨다. 그리고 사실상 새 왕조가 건국된 후 최초로 왕비가 된 분이다. 이성계의 첫째 부인 한씨는 비록 6남 2녀를 낳았으나 조선 왕조가 건국되기 전 해인 1391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왕비는 아니었다. 제2대왕 정종이 즉위한 직후 자신의 생모 한씨를 신의왕후로 추존한 것이다.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는 신덕왕후 능침인 정릉(貞陵)이 있다. 태조는 끔찍이 사랑하던 신덕왕후 강씨가 1396년(태조5) 별세하자 당시 성 내인 중구 정동 옛 ..
- 운남성 여행-(1) 초웅 공룡박물관, 대리석 원조 대리국, 이호(이해) 2020년 1월 20일부터 24일까지 이른바 4박 5일짜리 패키지 여행을 부부가 다녀왔다. 그동안 고교 동창생과 동부인하던 여행과 달리 둘이 나섰다. 그러나 동반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32명이어서 걱정도 앞섰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궁금했다. 이렇게 많이 출발하기는 처음이니 그렇다. 20일 밤 11시가 넘어서 출발한 비행기는 5시간 이상 날아서 운남성 현지 시각으로 21일 새벽 3시경에 곤명 비행장에 도착했다. 곤명은 내게는 낯선 지명이 아니다. 1985년 독립항쟁사를 연구할 때 익숙해진 지명이다. 연합군이 장개석 군대를 지원할 때 육로와 항공로의 종착점이 곤명이었다. 미얀마(옛 버마)에서 육로로 곤명에 이르는 통로를 ‘버어마 공로’라 불렀다. 장개석을 지원하는 통로라는 뜻으로 ‘원장(援蔣) 루..
- 격동의 19세기 조선(10) - 조선 해역에 나타난 이상한 배 ‘이양선’ 1866년 9월, 이른바 ‘이양선(이상한 모양의 선박)’으로 불리는 정체불명의 선박들이 수도 한양으로 연결되는 한강에 나타났다. 처음 보는 이상한 모양의 배라서 그냥 '이양선'으로 통칭했다. 김포 군수 정기화는 현장에 출동하여 국적과 항해 목적을 물었다. 물론 배 안에는 통역이 타고 있었다. 이때 프랑스 함대는 식료품을 공급해 달라고 요구했고, 조선은 인도적 차원에서 그 요청을 들어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아가기는커녕 도성을 향해 계속해서 올라왔다. 이에 조선은 무력으로 저지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866년 9월 26일 아침 조선군 선단은 프랑스 함대의 진로를 가로 막았다. 그러나 프랑스 함대의 집중 포화를 맞고 붕괴되고 말았다. 이로부터 프랑스 함대는 양화진을 거쳐 서강 어귀까지 거침없이 항..
- 거문도가 ‘해밀턴항’으로 서방 세계에 알려지다. 오늘날 거문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소재지다. 19세기말 열강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거문도는 당시 조선 국내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남해의 외로운 섬이었다. 가장 큰 섬인 서도와 두 번째 큰 동도에만 주민들이 살았다. 두 섬에는 각각 2개의 자연부락에 2천 여 주민들이 어업과 농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열악한 생활수준은 여느 섬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작은 섬 거문도가 역사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은 외국 선박들이 눈독을 들이면서 부터다. 1845년 6월 하순부터 7월 중순에 걸쳐 영국 해양탐사선 사마랑호가 제주도와 거문도 해역을 탐사하고 돌아갔다. 에드워드 벨처(Edward Belcher) 함장은 1848년 『사마랑호 탐사항해기(Narrative of the Voyage of HMS Samara..
- 중국 대련에서 백두산까지-4 2019년 9월 25일 역시 이른 아침에 출발한다. 오전 내내 달려서 집안에 도착한 후 점심을 먹고 고구려 유적을 답사한단다. 점심은 소불고기 무제한이란다. 얼마나 먹을지 모르겠다. 주차장 옆 마당에 식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 동창 일행이 한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통화에서 사 가지고 온 그 유명한 통화 포도주 한 병을 개봉했다. 2006년과 2012년에 나를 안내했던 현지 여행사 김사장이 고량주를 선물로 가지고 찾아왔다. 나도 그의 아들에게 작은 선물을 전달했다. 점심을 먹고 고구려 유적을 둘러보니 2012년에 비해 변화가 많았다. 가장 큰 변화는 장군총에 올라가는 계단을 철거해 버린 것이다. 처음 온 이들은 그냥 한 바퀴 빙 돌며 사진 몇 장 찍고 지나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