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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작은 역사, 일상

신천 강씨에서 토착화 한 ‘제주 강씨’

by 헬나이트 2020. 10.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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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에 우연히 제주도 출신의 강씨 학생으로부터 자신의 조상이 제주도에 입도한 것이 신덕왕후의 친정 후손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황해도 신천(信川)을 본관으로 하는 강씨들이 그 멀고 먼 제주도에 정착한 까닭이 궁금해졌다.

조선 태조대왕 이성계의 왕비이신 신덕왕후는 신천 강씨다. 그리고 사실상 새 왕조가 건국된 후 최초로 왕비가 된 분이다. 이성계의 첫째 부인 한씨는 비록 6남 2녀를 낳았으나 조선 왕조가 건국되기 전 해인 1391년에 사망했기 때문에 왕비는 아니었다. 제2대왕 정종이 즉위한 직후 자신의 생모 한씨를 신의왕후로 추존한 것이다.

조선 태조 대왕 어진(부분)

서울 성북구 정릉동에는 신덕왕후 능침인 정릉(貞陵)이 있다. 태조는 끔찍이 사랑하던 신덕왕후 강씨가 1396년(태조5) 별세하자 당시 성 내인 중구 정동 옛 미국 대사관 자리에 정성을 다해 능침을 조성했었다. 자신도 사후에 신덕왕후와 함께 묻힐 생각이었다. 현재도 정동(貞洞)으로 불리는 것은 원래 정릉이 있던 자리이기 때문에이름이 약간 남아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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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붉은 실선)과 구 정릉 위치(구미국공사관)

그런데 이방원이 태종으로 즉위한 후 아버지 태조대왕께서 1408년(태종8) 승하하자 이듬해 신덕왕후를 후궁으로 격하시킨 후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현재 정릉으로 이장해버렸다.

고려풍의 사각 장명등이 독특한 신덕왕후 정릉(서울 성북구)

그리고 원래 정릉을 화려하게 장식했던 석조물들은 1410년(태종10) 태종의 명에 따라 한양 도성의 최초 돌다리로 재건되는 광통교(광교, 광충교)의 건설 자재로 이용되었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짓밟히는 수난을 당하라는 의미였다. 신덕왕후 강씨에 대한 태종의 증오심이 얼마나 컸는지를 짐작케 하는 사례다.

초기 석재와 새 석재가 혼재되어 복원된 광통교(서울 청계천)

신덕왕후의 정릉은 도성 밖으로 멀리 이장된 채 세상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다. 우암 송시열의 건의로 1669년(현종10)에 비로소 왕비로 복위되고 능침도 오늘날의 정릉(성북구 정릉동)으로 복원되었다. 광통교에서 짓밟히던 정릉의 석조물 중 일부는 현재 청계천 복원공사 덕분에 햇빛을 받으며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복원된 광교 옆면을 장식한 옛 정릉의 묘지석(일부)

신덕왕후 강씨가 별세한지 2년 후인 1398년(태조7) 1차 왕자의 난(방원의 난, 정도전의 난, 무인정사)이 일어나 강씨 소생 혈육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방원은 정도전·남은·심효생 등 신덕왕후 측근으로 자신과 대립각을 세우던 정적들을 제거하고 실권을 잡았다. 신덕왕후의 친정 일족들도 이방원의 보복이 두려웠을 것이다. 그 칼날이 언제 누구에게 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이었다.

당시 전라도 관찰사(감사)로 있던 강영(康永)은 신덕왕후 강씨의 사촌 오라버니로 알려져 있다. 이방원의 칼날을 피해 목숨은 부지했으나 결국 1402년(태종2) 제주도로 귀양 와서 그대로 정착했다고 한다. 강영이 '제주 강씨'의 입도시조가 된 사연이다.

제주도 입도시조 감사공 '강영' 선생을 모신 조천서원

 

제주도에 들어 온 강영은 조천읍 함덕리에서 유배생활을 시작했다. 한편 강영이 신변의 위협을 느낀 나머지 단신으로 제주도에 피신했다는 설도 있다. 어쨌든 제주도에 들어온 강영은 인근지역 젊은이들을 훈도하며 함덕리에서 여생을 보냈다. '제주 4현'으로 숭앙받는 그의 신위는 현재 조천서원에 모셔져 있다. 강영은 제주 고씨 부인과 혼인하여 세 아들 강정(康禎)·강복(康福)·강만(康萬)을 두었다고 한다.

이후로 후손이 번성하여 오늘날 대한민국 신천 강씨의 절반 이상이 ‘제주 강씨’라고 할 정도가 되었다. 신천 강씨 문중에서는 '감사공파' 혹은 '제주파'로 분류하기도 한다. 6백년 세거지 제주도에서 번창하며 이제는 '제주 강씨'로 불러도 어색하지 않는 토성(土姓:토박이 성씨)이 된 것이다.

'제주 강씨'의 입도시조 감사공 '강영'과 부인 제주 고씨 묘역
수심이 얕은 조천읍 함덕리 함덕해수욕장
신천강씨 가족묘지 제단(서귀포시 윗새오름 돈내코 탐방지원센터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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