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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작은 역사, 일상

원릉군 원균 장군 묘역을 답사하며

by 헬나이트 2020.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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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1월 10일 그동안 미루던 원균 장군 묘역을 답사했다. 용인 이동면 사는 친구의 안내로 평택시 도일동에 위치한 원균 장군의 묘역과 관련 유적들을 답사했다.

원균 장군 묘역 입구 표지판
원균 장군 묘역 입구에 세워진 안내판

원균 장군은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에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로 참전하고, 1597년 삼도수군통제사로 출전했다가 전사하신 무장이다.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너무나 잘 알려진 역사인물이다. 그리고 원균 장군의 공과에 대해 많은 편차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원균 장군 선무공신 교서(보물 제1133호, 원릉군 기념관 사본)

조선시대 많은 무인들이 있었으나 자신의 행적을 기록으로 남긴 분은 매우 적다. 무인적인 기질로 인해 기록을 남기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결과 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기록을 남기신 충무공 이순신 같은 분들은 이때 남긴 기록으로 인해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어왔었다. 그러나 이 같은 기록을 남기지 않은 무인들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운 현실이다.

원균 장군 묘역 입구의 홍살문

오늘 원균 장군의 묘역을 참배하고 주변 유적들을 둘러보는 것은 왜란을 극복하는데 목숨을 던진 한 무장에 대한 존경의 표시다. 임진왜란에 참전한 조경남 의병장은 자신의 저작인 난중잡록』에서 원균 장군을 비난하는 무리들에 대해 "전장에서 전사한 원균에게 죄를 준다면, 적을 피해 도망이나 다니면서 목숨을 부지한 자들에게는 무슨 죄를 주어야 할 것인가"라고 탄식했다.

"조경남 의병장의 『 난중잡록 』 한장본

전장에서 도망을 다니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죽을 각오로 싸우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이번 답사에서 알게 된 사실 중에 하나는 원균 장군의 집안이 대대로 무인 집안이다 보니 많은 일족들이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전사한 사실이다.

원균 장군 가계도(원릉군 기념관)
원주 원씨 임진왜란 공신 명단(원릉군 기념관)

원균 장군의 묘소에는 시신이 안장되지 않았다. 주인을 잃은 애마가 남해 바닷가 전장에서 이곳 고향집으로 달려와서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말안장에는 장군의 신발과 담뱃대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주인이 전사한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고 숨을 거둔 애마의 무덤도 원균 장군 묘역의 한 자락에 조성되었다. 그 연원을 기록한 비석이 애마총 앞에 서 있다. 정작 원균 장군의 묘역은 시신을 수습하지 못했기 때문에 장군의 유품으로 초혼하여 매장하는 것으로 조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해전 위치도(원릉군 기념관)
원균 장군 묘소와 오른쪽 하단의 애마총
시신 없이 유품으로 조성한 원균 장군 묘역 
원균 장군 묘소 안내문
선조가 원균 장군 제사에 하사한 치제문 번역문
원균 장군 묘역 하단에 자라잡은 애마의 무덤과 연유를 적은 비석
애마총 비석 뒷면
원균 장군 사당
원균 장군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우
원균 장군 사당 안내문
원균 장군 관련 유물을 전시하는 '원릉군 기념관'(평택시 도일동)
원균 장군 묘역에서 바라 본 생가터 부근 일대(평택시 도일동)
모선재(원주 원씨 사당) 앞에 놓인 원균길 표지석
원균길 코스 안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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