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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작은 역사, 일상

‘돌아가는 삼각지’와 불세출의 가수 배호

by 헬나이트 2020. 11.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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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30년 넘게 인연을 맺었던 용산구 삼각지는 보통 2가지가 연상되는 곳이다. 하나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 배호가 부른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며, 다른 하나는 1994년에 철거된 회전 입체 교차로다. 회전 교차로가 360도 원형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에 배호의 노래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십상이지만 전혀 상관없다고 한다.

삼각지 회전 입체 교차로(1994년 철거)

배호를 불세출의 명가수로 만들어 준 ‘돌아가는 삼각지’ 는 작곡가 배상태가 만든 불후의 명곡이다. 그는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한 사나이가 아쉬운 발길을 돌려서 되돌아가는 상황을 연상하여 이 노래를 작곡했다고 한다. 더구나 1963년에 작곡된 ‘돌아가는 삼각지’는 1967년 4월 배호가 만 25세 때 앨범으로 발표되었다. 따라서 1967년 12월에 세워져 1994년에 철거된 콘크리트 회전 입체 교차로와는 관련이 없다. 배호의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가 크게 히트하면서 덩달아 회전 입체 교차로가 유명세를 타게 된 것이다.

20만장이 팔렸다는 '돌아가는 삼각지' 초기 앨범

‘돌아가는 삼각지’를 작곡한 배상태는 수년간 이 노래를 가장 잘 부를 수 있는 가수를 물색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1966년 신장염에 걸려 투병 중인 배호를 찾아갔고, 사양하던 배호가 병석에서 녹음을 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현재 용산구 한강로 국가보훈처 서울지부 앞 작은 공원에 노래비가 서있다.

29세에 요절한 가수 배호의 히트곡 ‘돌아가는 삼각지’ 가사를 새긴 노래비는 1971년 11월 7일에 그가 타계한 후로 30년이 지난 2001년 11월에 세워졌다. 1년 전 11월에는 배호 노래를 좋아하는 수많은 팬들의 염원에 따라 삼각지 로터리 뒤편 큰 골목길을 ‘배호길’로 명명했다. 도로명에 가수 이름을 사용한 첫 사례라고 한다.

삼각지 소공원에 세워진 '돌아가는 삼각지' 노래비(2001.11)

배호는 한국광복군 제3지대원으로 알려진 아버지 배국민과 어머니 김금순 여사의 장남이다. 남동생 배천금은 유아기에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배명신은 그의 여동생이다. 아버지 배국민이 독립유공자로 인정받고 장남 배호가 생존해 있다면 국가보훈처에서 지급하는 보훈연금을 받고 있을 것이다. 그는 1942년 4월 중국 산동성 제남(濟南, 지난)에서 태어났다. 생존했다면 78세 노신사가 되어 KBS 가요무대에 단골로 출연하고 있을 것이다. 몇 년 전에 제남을 지날 때 배호를 생각하며 ‘돌아가는 삼각지’를 흥얼거린 기억이 난다.

배호가 태어난 중국 제남시와 천성공원

1945년 일제가 패망하고 조국이 광복되었으나 광복군은 군대조직으로 귀국할 수 없었다. 미 군정의 방침에 따라 개인자격으로 귀국했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귀국한 꼬마 배호는 1946년 4월경부터 현 종로구 창신동에서 살기 시작했다. 그의 어릴 때 이름은 배만금(호적명)이다. 소년 배만금은 만 7세가 되던 1949년 집 근처 창신국민학교에 들어갔다. 중학교 때 배신웅으로 개명했다고 한다. 배호는 유명 작곡가인 넷째 외삼촌 김광빈이 지어준 예명이다. 김광빈은 제남대학 음악과를 졸업했다고 한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에서 피난 생활을 하기도 했다. 서울과 부산을 오가며 생활하다가 넷째 외삼촌 김광빈에게 드럼 연주를 배웠다. 그는 배호의 음악적 스승이었다. 1955년 아버지가 별세한 후로는 외삼촌들과 더욱 가까워졌다. 그리고 외가 쪽에서 물려받은 음악적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드러머로 천재성을 발휘한 16세 소년 배호

그의 둘째 외삼촌 김광옥은 일본에서 음악대학을 졸업한 후 유명 교향악단의 지휘자로 활동했고, 셋째 외삼촌 김광수는 일본 메이지대학 문예과를 졸업한 후 바이올린 연주자로 서울중앙방송국(KBS전신)과 TBC동양방송 악단장을 지냈다. 1963년 배호라는 예명을 지어준 넷째 외삼촌 김광빈은 광복 후에 중국에서 귀국하여 MBC 초대 악단장을 지내며 작곡가로 이름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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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호 넷째 외삼촌 김광빈 내외의 노년 모습(2008. 12 작고)

소년 배신웅은 16세에 가요계 활동을 시작하여 18세 때인 1960년 주한 미군 ‘캠프마켓’ 등에서 드럼을 쳤다. 그는 중학교를 중퇴한 후로 음악을 공부한 적이 없기 때문에 악보를 읽는데 애로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소리만 듣고도 곧바로 연주하는 천재적 재능을 발휘했다. 1963년 넷째 외삼촌 김광빈이 발표한 작곡집에 배호라는 예명으로 ‘굿바이’와 ‘사랑의 화살’을 부르면서 1964년부터 드럼 치는 가수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는데, 당시 22살이었다.

'배호와 그 악단'에서 드럼을 치는 배호(1965년)

히트곡인 ‘돌아가는 삼각지’는 음반을 발표한 1967년 4월 이후로 최고의 인기곡이 되었다. 그의 나이 25세다. 뒤이어 병석에서 발표한 최치수 작사 배상태 작곡의 ‘안개 낀 장충단 공원’이 또다시 히트함에 따라 주요 가요 대상을 휩쓸며 당대 최고 가수의 명예를 누렸다. 그러나 통행금지 시간에 이별을 한다는 ‘영시의 이별’은 금지곡이 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배호의 '영시의 이별' 앨범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신장염을 치료하던 배호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1971년 11월 7일 향년 29세로 일생을 마감했다. 그의 유택은 양주시 장흥 신세계공원묘지에 있다.

배호의 유택(신세계공원묘지)

대한민국 정부는 2003년 10월 천상의 목소리로 수많은 펜들의 심금을 울리며 가요계에 큰 족적을 남긴 배호에게 옥관문화훈장을 추서 했다. 2003년 이후로 배호 노래를 좋아하는 동호인들을 중심으로 배호 가요제가 매년 열리고 있다.

배호가 타계한 지 10년 후인 1981년에 MBC가 실시한 특집 여론 조사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로 선정되었다. 2005년 6월 '광복 60년 기념 KBS 가요무대' 여론조사에서는 '국민에게 가장 사랑받은 국민가수 1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배호를 만날 수 있는 공간(지하철 4호선 삼각지역 내)

https://youtu.be/utDXGtUbZ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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