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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대원군6

격동의 19세기 조선(1) - 흥선군, 그는 누구인가? 흥선군(興宣君) 이하응은 자신의 둘째 아들 이명복을 조선 26대 국왕으로 만든 인물이다. 그는 24세 때인 헌종 9년(1843) 흥선군이 되었다. 아들이 국왕이 되자 국왕의 생부이기 때문에 ‘흥선대원군’의 칭호를 받게 된 것이다. 그의 아버지 남연군은 인평대군(인조의 3남)의 6대손인 이병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연군 이구는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가 영조의 증손자가 되었다. 따라서 흥선군은 영조의 현손(玄孫)이 된다. 남연군 이구는 민경혁의 딸 여흥 민씨와 혼인하여 1820년(순조 20) 음력 12월 21일 안국동궁에서 흥선군 이하응을 낳았다. 아들 이하응이 12세 때 민씨와 사별했다. 양아버지인 은신군이 모함을 당해 제주도 귀양지에서 변사한 후로 순조 때는 미관말직을 전전하다가 아들 흥.. 2020. 8. 7.
조선의 천주교 박해와 프랑스함대의 침공 조선에서는 신유사옥과 기해사옥 등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의 성장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양반사회의 전통적 가치관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조선 지배층의 위기의식도 함께 고조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863년(철종 14) 12월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장악했다. 그는 세도정치의 폐단을 제거하여 국왕의 전제권을 강화시키고, 쇠퇴해가는 유교적 전통 질서를 재건하는데 주력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할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고종 즉위 이듬해인 1864년 2월 러시아인들이 두만강을 건너와 경흥부에서 통상을 요구하는 등 남진 위협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 같은 국가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프랑스인 선교사를 이용하는 방안이 제기된 것이다. 흥선대원군은 프랑스 선교사.. 2020.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