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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6

충무공 이순신의 분신 무의공 이순신(2)-전라좌수영 함대의 중위장 이순신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4월, 부산 지역으로 왜군이 쳐들어오자 경상좌수사와 경상우수사가 모두 피신해 버렸다. 무방비나 다름없는 남해안에 왜군은 별로 힘들이지 않고 상륙했다. 출동 준비를 갖추고 있던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조정의 명령이 떨어지자 즉시 결행에 들어갔다. 이순신은 5월 5일 거제도 서쪽 미륵도의 당포 앞바다에서 원균(元均)의 경상우수영 수군과 합류하기로 했다. 전라우수사 이억기(李億祺)에게도 참전을 종용했다. 전라좌수영 수군은 주력 전선인 대형 판옥선 24척과 중형 협선(挾船) 15척, 소형 쾌속선인 포작선(鮑作船) 46척으로 함대를 편성했다. 5월 4일 새벽 출전 깃발을 높이 달고 여수항을 떠났다. 방답첨사 이순신은 중위장으로서 함대의 주축이 되어 출전했다. 전라좌수영 함대가 당포 앞바다.. 2020. 4. 15.
충무공 이순신의 분신 무의공 이순신(1)-또 한 사람의 이순신 조선은 건국된 후로 2백 년 동안 평화롭게 살았다. 1592년 4월 일어난 임진왜란은 전쟁을 잊고 살던 조선에 참혹한 시련을 안겨주었다. 그러나 조선은 수많은 전쟁 영웅들의 활약으로 멸망의 벼랑에서 다시 살아날 수 있었다. 그 많은 영웅들 중에서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을 대표적 인물로 손꼽는데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는다. 그가 지휘한 여러 해전의 승리가 곧 나라를 구한 결정적인 요인이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충무공 이순신의 휘하에 또 다른 이순신이 있었던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마치 그의 분신처럼 전장을 누비던 무의공(武毅公) 이순신(李純信)이다. 1553년(명종8)에 태어나 40세에 임진왜란을 맞이했다. 1545년(인종1)에 태어나 당시 48세이던 충무공 이순신 보다 여덟 살 연하인 셈이.. 2020. 4.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