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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일기3

충장공 양헌수와 병인양요(9)-무인 양헌수의 독특한 문집 『하거집』 조선시대에 이른바 ‘문집’으로 불리는 개인의 문학 작품집은 문인 학자들의 전유물이었다. 따라서 무인의 문집은 매우 드물었다. 양헌수는 유학을 전공하다가 무인이 되었지만 항상 책을 가까이했다. 유학자의 습성을 지닌 무인이었기에 군수․목사․병사․어영대장․좌포장․형조판서․금위대장․공조판서 등의 관직을 거치면서 『하거집(荷居集)』을 남길 수 있었다. 여느 무인들과는 달리 양헌수가 남긴 『하거집』은 다양한 장르를 통해 문무겸전한 그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양헌수가 견지했던 선비로서의 학문적 자세에 대해 영선사로 잘 알려진 김윤식은 ‘무인의 수련을 쌓기 위해 아침에 집을 나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길을 걸으며 『대학(大學)』을 암송하고, 날이 저물어 돌아올 때는 『중용(中庸)』을 외우는 ‘공부벌레’였다고 회고했다... 2020. 4. 8.
충장공 양헌수와 병인양요(5)-철저한 지형정찰과 양헌수의 전략 판단 순무 천총 양헌수는 10월 16일 자정 무렵 도성을 출발하여 17일 아침 한강 양화진에서 흥선대원군의 격려를 받으며 강화도로 떠났다. 18일 해질 무렵에 통진에 도착하여 임시 둔지를 설치했다. 이어서 중군 이용희의 본대가 도착한 후 출동 준비를 갖추었으나 정작 타고 갈 선박이 없었다. 이때 양헌수는 프랑스군의 침략행위를 규탄하고 대표 회담을 제의하는 서한을 직접 작성하여 프랑스군 진영에 보냈다. 그러나 삼정승을 처벌하고 수호조약을 체결할 것을 요구하는 답변이 돌아왔다. 천총 양헌수의 판단은 단호했다. 무력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10월 19일 지리에 밝은 인근 주민과 함께 통진 뒷산에 올라가 정찰을 실시했다. 프랑스 함대의 전체적 규모와 군세를 파악한 후 매복조와 정찰조를.. 2020. 3. 30.
서양의 침략을 막아낸 병인양요의 명장, 양헌수 장군 <병인일기>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서 활약한 명장으로, "서양과 싸워 이긴 유일한 조선인"이라는 타이틀로 유명하다. 양헌수의 『병인일기』는 1866년(고종 3) 음력 9월 3일(양력 10. 11) 국왕 비서실인 승정원(承政院)의 동부승지(同副承旨:정3품 당상관)에 임명되어 6방 중에서 공방(工房)의 업무를 관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때 양헌수는 양씨 시조의 탄생지인 제주에서 목사(牧使)로 근무하다가 국왕의 부름을 받아 비로소 중앙에 근무하게 된다. 공업(工業) 분야에 관련된 국무를 전문적으로 보좌하는 국왕 비서관에 임명되었다. 이 같은 요직에 근무하게 된 것은 그가 제주목사로 근무할 때 큰 재난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병인일기』의 주요 줄거리를 살펴보면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 2020.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