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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라 쓰고 여행이라 읽는/해외여행

중국 대련에서 백두산까지-4

by 헬나이트 2020. 7.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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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5일 역시 이른 아침에 출발한다.  오전 내내 달려서 집안에 도착한 후 점심을 먹고 고구려 유적을 답사한단다.  점심은 소불고기 무제한이란다. 얼마나 먹을지 모르겠다.

주차장 옆 마당에 식탁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 동창 일행이 한 테이블에 자리 잡았다.

통화에서 사 가지고 온 그 유명한 통화 포도주 한 병을 개봉했다. 2006년과 2012년에 나를 안내했던 현지 여행사 김사장이 고량주를 선물로 가지고 찾아왔다. 나도 그의 아들에게 작은 선물을 전달했다. 

점심을 먹고 고구려 유적을 둘러보니 2012년에 비해 변화가 많았다. 가장 큰 변화는 장군총에 올라가는 계단을 철거해 버린 것이다. 처음 온 이들은 그냥 한 바퀴 빙 돌며 사진 몇 장 찍고 지나갈 뿐이다.

영토를 최대로 확장한 광개토왕의 정식 호칭은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다.  호태왕, 광개토대왕, 광개토태왕 등의 호칭도 여기서 나왔다.  
내부에서 찍은 광개토왕릉비, 용산 전쟁기념관 야외 전시장에 복제품이 있다.
광개토왕릉(추정) 한.일 설명문
광개토왕릉으로 추정되는 왕릉, 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왕릉, 정상부에 묘실이 있다.
정상부의 묘실 입구, 장군총에 비해 묘실이 약간 좁다.
왕릉 정상부에서 내려단 본 주변 지형
관람용 철계단이 철거된 장군총(장수왕릉 추정), 장수왕은 평양으로 천도한 후에 서거했다.
철계단으로 올라가 묘실 내부를 관람하는 관광객(경인일보, 2005.12.27). 묘실은 태왕릉 묘실보다 넓다.
왕릉 주변 풍광, 저 산은 장수왕 때도 저렇게 있었을 것이다. 
차창을 통해 본 환도산성 앞 고분군, 왼쪽이 환도산성인데 평지성인 국내성의 방어력을 보완하는 산성이다. 임시수도로 사용되기도 했다.
분지형 환도산성, 전면의 출입구와 해자로 이용한 통구하, 오른쪽이 고분군(동북아역사재단). 244년 위나라 유주자사 관구검군에게 함락되었다. 고구려 동천왕은 압록강쪽으로 피신했다가 돌아왔다.
245년 건립설이 유력한 관구검 기공비(25.8*26.4), 1906년 집안시 판석령 도로공사 때 발견(요녕성 박물관, 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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