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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2

충장공 양헌수와 병인양요(6)-전술의 기본에 충실한 천총 양헌수 양헌수는 선발대 38명을 직접 이끌고 11월 6일 오후 4시경 덕포 나루에 도착했다. 앞서 숨겨 둔 선박을 끌어내 도하 준비를 갖추고, 이날 저녁에 후속 부대가 도착하자 5척으로 도하 준비를 서둘렀다. 그런데 이튿날(11.7) 새벽에 중군 이용희로부터 통진부로 철수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었다.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덕포와 통진부의 중간쯤 되는 곳에 이르자 다시 덕포로 돌아가 계획대로 추진하라는 명령이 다시 전달되었다. 덕포로 돌아온 양헌수는 날이 어두워지자 제1진 170명을 3척에 나누어 도하시켰다. 이때 후방 쪽에서 뱃머리를 돌리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양헌수는 짐짓 목청을 높여 ‘소리친 자를 당장 잡아와 목을 쳐라’고 호통을 쳤다. 겁먹은 군사들의 동요를 막기 위한 임기응변이었다. 제1진이 광.. 2020. 4. 1.
조선의 천주교 박해와 프랑스함대의 침공 조선에서는 신유사옥과 기해사옥 등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천주교의 성장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양반사회의 전통적 가치관이 붕괴될지도 모른다는 조선 지배층의 위기의식도 함께 고조되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1863년(철종 14) 12월 고종이 즉위하고 흥선대원군이 실권을 장악했다. 그는 세도정치의 폐단을 제거하여 국왕의 전제권을 강화시키고, 쇠퇴해가는 유교적 전통 질서를 재건하는데 주력하였다. 대외적으로는 러시아의 남진을 저지할 방안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고종 즉위 이듬해인 1864년 2월 러시아인들이 두만강을 건너와 경흥부에서 통상을 요구하는 등 남진 위협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다. 이 같은 국가 위기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프랑스인 선교사를 이용하는 방안이 제기된 것이다. 흥선대원군은 프랑스 선교사.. 2020. 3.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