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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종2

격동의 19세기 조선(3) - 국왕 지명을 받은 12세 소년 이명복 철종의 후계자를 받아들이되 누구의 법통을 승계하느냐에 대해서는 서로 간에 인식을 달리하고 있었다. 즉 헌종의 어머니 조대비가 자신의 남편인 익종의 대통을 승계하도록 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헌종 왕비 홍씨는 헌종을 승계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철종 왕비 김씨는 당연히 철종의 후계자가 되는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세 왕비는 궁궐밖에서 왕손을 영입할 경우 자신의 남편을 승계하게 함으로써 수렴청정으로 권력을 장악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배후에는 조두순·홍순목 등과 같은 친정 종친 세력의 유력 인사들이 도사리고 있으면서 국왕 교체기에 실권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863년 12월 8일 철종이 재위 14년 만에 서거했다. 조대비의 왕위계승자 지명은 매우 전격적으로 신속하.. 2020. 8. 14.
격동의 19세기 조선(1) - 흥선군, 그는 누구인가? 흥선군(興宣君) 이하응은 자신의 둘째 아들 이명복을 조선 26대 국왕으로 만든 인물이다. 그는 24세 때인 헌종 9년(1843) 흥선군이 되었다. 아들이 국왕이 되자 국왕의 생부이기 때문에 ‘흥선대원군’의 칭호를 받게 된 것이다. 그의 아버지 남연군은 인평대군(인조의 3남)의 6대손인 이병원의 아들로 태어났다. 남연군 이구는 정조의 이복동생인 은신군의 양자로 들어가 영조의 증손자가 되었다. 따라서 흥선군은 영조의 현손(玄孫)이 된다. 남연군 이구는 민경혁의 딸 여흥 민씨와 혼인하여 1820년(순조 20) 음력 12월 21일 안국동궁에서 흥선군 이하응을 낳았다. 아들 이하응이 12세 때 민씨와 사별했다. 양아버지인 은신군이 모함을 당해 제주도 귀양지에서 변사한 후로 순조 때는 미관말직을 전전하다가 아들 흥.. 2020. 8.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