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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성군2

격동의 19세기 조선(5) - 새 국왕 즉위하고, 조대비는 수렴청정 흥선군의 제2자인 이명복이 익성군으로 입궐하여 즉위하는 시기를 언제로 잡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예조에서 담당한다. 예조는 『국조보감』을 상고하여 크게 두 가지 전례를 제시했다. 성종과 철종의 경우는 입궐하던 당일에 즉위하고, 명종과 선조는 선왕의 성복일에 등극했던 사례에 착안했다. 그러나 대왕대비 조씨는 예조의 건의를 묵살하고 성복일에 즉위식을 거행하도록 지시했다. 명종과 선조의 전례가 원용된 것이다. 이와 동시에 예조는 대왕대비 조씨가 익성군이 국왕으로 즉위한 이후부터 국왕을 대신하여 실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수렴동청정절목’을 작성했다. 이에 따르면 수렴하는 처소는 편전으로 하며, 국왕은 수렴 바깥의 한복판에 남쪽을 향해 앉고 대왕대비는 수렴 안의 동쪽 가까이에 역시 남쪽을 향해 앉도록 배치했다. 실.. 2020. 8. 21.
격동의 19세기 조선(3) - 국왕 지명을 받은 12세 소년 이명복 철종의 후계자를 받아들이되 누구의 법통을 승계하느냐에 대해서는 서로 간에 인식을 달리하고 있었다. 즉 헌종의 어머니 조대비가 자신의 남편인 익종의 대통을 승계하도록 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 헌종 왕비 홍씨는 헌종을 승계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철종 왕비 김씨는 당연히 철종의 후계자가 되는 것으로 인식한 것이다. 세 왕비는 궁궐밖에서 왕손을 영입할 경우 자신의 남편을 승계하게 함으로써 수렴청정으로 권력을 장악하려는 속셈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의 배후에는 조두순·홍순목 등과 같은 친정 종친 세력의 유력 인사들이 도사리고 있으면서 국왕 교체기에 실권을 장악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1863년 12월 8일 철종이 재위 14년 만에 서거했다. 조대비의 왕위계승자 지명은 매우 전격적으로 신속하.. 2020. 8.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