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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이야기82

병인양요 당시 조선 주변의 시대상황(feat. 포함외교) 조선사회는 17세기 초 명나라에서 서양의 과학 문명과 함께 유입되어 ‘서학(西學)’으로 불리던 천주교가 몰락한 양반과 중인층은 물론 상민과 천민에 이르기까지 광범하게 확산되자 18세기 후반부터는 사상적 혼란에 빠져들었다. 조선 지배층은 불안했다. 장차 조선 사회의 전통적 신분질서를 붕괴시킬 우려가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었다. 결국 1785년(정조 9) 천주교 포교 금지령이 내려졌다. 1800년 정조(正祖)가 세상을 떠나고 순조가 11세로 즉위한 이듬해 청나라 신부 주문모(周文模)와 3백여 명의 신자들이 유배 혹은 처형당하는 신유사옥(辛酉邪獄)이 발생했다. 그리고 1836년(헌종 2) 1월 이후로 비밀리에 입국한 3명의 프랑스인 선교사의 선교활동으로 신자가 급증하자 조야에 강경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2020. 3. 8.
서양의 침략을 막아낸 병인양요의 명장, 양헌수 장군 <병인일기> 병인양요 당시 강화도에서 활약한 명장으로, "서양과 싸워 이긴 유일한 조선인"이라는 타이틀로 유명하다. 양헌수의 『병인일기』는 1866년(고종 3) 음력 9월 3일(양력 10. 11) 국왕 비서실인 승정원(承政院)의 동부승지(同副承旨:정3품 당상관)에 임명되어 6방 중에서 공방(工房)의 업무를 관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때 양헌수는 양씨 시조의 탄생지인 제주에서 목사(牧使)로 근무하다가 국왕의 부름을 받아 비로소 중앙에 근무하게 된다. 공업(工業) 분야에 관련된 국무를 전문적으로 보좌하는 국왕 비서관에 임명되었다. 이 같은 요직에 근무하게 된 것은 그가 제주목사로 근무할 때 큰 재난을 성공적으로 극복한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선 『병인일기』의 주요 줄거리를 살펴보면 강화도에 상륙한 프랑.. 2020. 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