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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오군란2

아! 6월 25일-6·25 전쟁 70주년 특집-"왜 6월 25일인가? 왜 한국전쟁인가?" 오늘이 6·25 전쟁 발발 70주년이다. 우리는 ‘6·25 전쟁’이라고 부르지만, 국제적으로는 ‘한국전쟁(Korean War)'으로 부른다. 유엔군이 대거 참전하면서 '한국에서 일어난 전쟁'이라는 의미로 부르다가 고정 명칭으로 굳어진듯 하다. 우리 선조들은 역사적 주요사건에 주체를 분명히 하는 명칭을 부여했다. 예컨대 ‘임진왜란(임진년에 왜놈이 일으킨 난리)’ ‘병자호란(병자년에 오랑캐가 일으킨 난리)’ ‘이괄의 난(이괄이 일으킨 반란)’ ‘병인양요(병인년 서양 오랑캐들의 소요사건)’ '임오군란(임오년에 군인들이 일으킨 소요사태)' 등은 난리나 반란 혹은 소요를 일으킨 집단을 명확하게 지적하고, 주체적 입장에서 명칭을 부여한 것이다. 그런데 ‘6·25전쟁’이나 ‘한국전쟁’은 전쟁을 일으킨 집단이 누구인지.. 2020. 6. 25.
충장공 양헌수와 병인양요(8)-임오군란도 비켜간 청백리 ‘양대장’ 집 정족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끈 양헌수는 한성부 우윤(정3품)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오히려 무거웠다. 서구 열강의 재침이 두려워 관직을 내놓고 낙향하는 관리들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양헌수는 “우리 집안은 국가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다. 유사시에는 나라에 몸을 바쳐야 하는데 어찌 한 발자국인들 떠날 수 있겠는가.” 라고 결연한 의지를 나타냈다. 양헌수는 용양위호군 겸 오위도총부부총관, 진무영 중군, 어영청 중군, 금위영 중군, 승정원좌승지 겸 경연참찬관, 사옹원제조 등 요직을 거쳤다. 1869년 12월에는 황해도 육군의 최고사령관인 황해병사(종2품)로 부임하여 외직으로 나갔다. 자신의 조부 양완(梁垸)이 경상좌수사를 역임했고, 또 증조부 양세현(梁世絢)이 앞서 황해병사를 역임한 뒤였다. 증조부가.. 2020.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