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부마국2

우리 역사에 새겨진 해외파병(2)-원의 일본 침공에 고려군 파병 고려는 30여년 지속된 몽골과의 적대관계를 1259년 청산했다. 군신관계가 수립되자 몽골의 강력한 정치적 간섭이 시작되었다. 몽골은 1271년부터 원(元)으로 국호를 바꾸고 세계 대제국 건설의 야망을 키웠다. 원나라는 평화적 방법으로 일본과 관계 설정을 시도하다가 실패하자 무력적 방법으로 전환하였다. 원정군에 고려군의 파병을 요구해왔다. 고려는 원의 일본 원정 기지로 전락했다. 주권을 제약받고 있던 고려로서는 원정을 준비하고 군대를 파병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원나라 군대의 전쟁 준비도 고려 땅에서 이루어졌다. 전선 수백 척과 각종 장비 및 군량을 고려가 준비했다. 1274년 1차 원정에 전선 900척을 동원하고 고려 군민 15000여 명이 직접 참전했다. 이른바 고려-원 연합군은 몽한군(蒙漢軍:몽골족.. 2020. 4. 29.
우리 역사에 새겨진 해외파병(1)-해외 파병 역사의 이해 우리 역사에서 대외파병은 ‘파병’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범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다른 나라와 연합작전을 염두에 둔 파병이라면 13세기 후반 고려가 원(元)나라 몽골군과 일본 원정에 출병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13세기 이후로 21세기 초반에 접어든 오늘날까지 7백여 년의 파병 역사가 있다. 그러나 시대적 환경과 군사적 상황은 제각기 달랐다. 자위적 수단으로 출병하는 경우는 연합군을 편성하기 보다는 단독으로 작전을 벌였다. 주변 강국의 요청에 따라 무리한 출병을 단행한 경우는 지휘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파병 역사는 강대국에 의해 자주권이 크게 제약되어 일방적 요구를 받아들여야만 했던 사례가 많았다. 불가피한 파병은 전장에 출동하는 군사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많은 고통이 뒤따.. 2020.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