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평화유지활동2

우리 역사에 새겨진 해외파병(7)-국군의 베트남 및 PKO 파병 20세기 중반에 자유 민주주의 국가로 출범한 대한민국은 남북으로 분단됐고, 1950년 북한군의 남침공격을 받았다. 미국을 비롯한 유엔 참전국의 지원을 받아 북한과 중공군을 물리쳤다. 10여 년 후인 1964년 베트남에서 전쟁이 격화되었다. 같은 분단국인 ‘베트남에서 공산주의를 차단하는 것이 곧 한반도 안보와 직결된다’는 인식이 퍼져있었다. 미국과 남베트남 정부가 지원군 파병을 요청해왔다. 대한민국은 그 해 9월 1차로 140명 규모의 이동외과 병원과 태권도 교관단을 파견했다. 이어 전투 부대를 수차례 파병하게 되었다. 1971년 12월 1단계 철수가 시작된 이래 1973년 파리 휴전협정 체결에 따라 그해 3월 철수를 완료했다. 8년 반 동안 육해공군 연인원 325,500여명이 참전해 5,000여 명 사상.. 2020. 5. 15.
우리 역사에 새겨진 해외파병(1)-해외 파병 역사의 이해 우리 역사에서 대외파병은 ‘파병’의 개념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따라 범위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다른 나라와 연합작전을 염두에 둔 파병이라면 13세기 후반 고려가 원(元)나라 몽골군과 일본 원정에 출병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13세기 이후로 21세기 초반에 접어든 오늘날까지 7백여 년의 파병 역사가 있다. 그러나 시대적 환경과 군사적 상황은 제각기 달랐다. 자위적 수단으로 출병하는 경우는 연합군을 편성하기 보다는 단독으로 작전을 벌였다. 주변 강국의 요청에 따라 무리한 출병을 단행한 경우는 지휘권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었다. 우리나라 파병 역사는 강대국에 의해 자주권이 크게 제약되어 일방적 요구를 받아들여야만 했던 사례가 많았다. 불가피한 파병은 전장에 출동하는 군사는 물론 국가적으로도 많은 고통이 뒤따.. 2020. 4. 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