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염창항1 충장공 양헌수와 병인양요(4)-국가위기를 두 어깨에 진 천총 양헌수 조선은 1866년 천주교 신자 8천 여 명과 프랑스 선교사 9명을 처형한 병인사옥(丙寅邪獄)으로 인해 프랑스 함대의 침공을 받았다. 프랑스 극동함대는 한강 하구의 염창항(鹽倉項, 서울 강서구 염창동)에 설치된 차단선을 뚫고 서강 입구까지 들어왔다가 10월 3일 산둥반도의 지부항으로 돌아갔다. 그 후 프랑스군은 청국과 일본 요코하마에 주둔한 해군 1천 여 명을 군함 7척에 싣고 10월 11일 로즈(Rose) 사령관의 지휘 하에 지부항을 떠났다. 이튿날(12일) 저녁 6시경 서해안 남양만 앞바다 입파도 인근에 정박했다. 14일에는 강화해협을 30㎞나 거슬러 올라가 강화도 동북단 갑곶진 앞 해상에 이르렀다. 이때까지 조선군과의 무력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늘날 강화 수로 양안에 있는 돈대 및 포대를 병인양.. 2020. 3. 27.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