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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랑호 탐사항해기2

거문도에 찾아온 장기체류 손님, 영국 함대 1885년 2월, 제정 러시아가 아프가니스탄의 펜자드(Penjdeh) 지역을 침공한 사건이 발생했다. 영국이 우려하고 있던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영국은 러시아의 움직임에 더욱 예민해졌다. 조선 동해안 영흥만을 조사한 러시아인이 1884년 이곳을 ‘나자레프항(Port Lazareff)'으로 명명하는가 하면, 장차 해군이 점령하려 한다는 소문이 영국의 불안감은 더욱 고조시켰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영국은 거문도의 전략적 가치를 새롭게 떠올렸다. 블라디보스톡항을 모항으로 하는 러시아 군함들을 감시하기 좋고, 유사시에 신속히 대응할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앞서 1845년 영국 해양탐사선 사마랑호를 타고 제주도와 거문도 해역을 탐사한 에드워드 벨처 함장이 1848년 『사마랑호 탐사항해기』를 간행한 후로 .. 2020. 9. 22.
거문도가 ‘해밀턴항’으로 서방 세계에 알려지다. 오늘날 거문도는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소재지다. 19세기말 열강의 관심을 집중시켰던 거문도는 당시 조선 국내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남해의 외로운 섬이었다. 가장 큰 섬인 서도와 두 번째 큰 동도에만 주민들이 살았다. 두 섬에는 각각 2개의 자연부락에 2천 여 주민들이 어업과 농업을 병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열악한 생활수준은 여느 섬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다. 작은 섬 거문도가 역사 무대에 등장하게 된 것은 외국 선박들이 눈독을 들이면서 부터다. 1845년 6월 하순부터 7월 중순에 걸쳐 영국 해양탐사선 사마랑호가 제주도와 거문도 해역을 탐사하고 돌아갔다. 에드워드 벨처(Edward Belcher) 함장은 1848년 『사마랑호 탐사항해기(Narrative of the Voyage of HMS Samara.. 2020. 9. 6.